<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52
화산(火山)에 오른 짜라투스트라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꿈틀꿈들 검푸른 연기를 내뿜는 불덩어리를 보면서 말한다:
"거대한 사건이란, 나의 벗 지옥의 소요(騷擾)여!...... 우리들의 가장 소란스러운 때가 아니고 가장 조용한 때이다....... 세계가 그 주위를 회전하는 것은 새로운 소요의 발견자를 둘러싸고서가 아니다. 새로운 가치의 발견자를 둘러싸고서이다. 회전할 때 세계는 소리 없이 회전하는 것이다." (1)
<거대한 사건>이란, 니체가 보기에, 물질적으로 혹은 실체적으로 일어나는 세상사(世上事)가 아니고,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세계사(世界事)__세계의 문제_다. 어떤 충격적인 세상의 사건이 일어나면, 신문이나 풍문을 통해 세상은 떠들썩하게 요동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은 진정되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냥 그뿐인 것이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화산이 대폭발한 후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여진과 작은 폭발과 낙진이 계속된다고 해도 세상은 조금씩 진정되는 것이다__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듯이.
"...... 소요와 연기가 거두어질 때, 정말로 일어났던 사건이란 아무것도 없지 않았던가! 설사 도시가 미이라가 되고 하나의 소상(塑像)이 진흙 속에 쓰러질지언정 그것이 무엇이었단 말인가!" (2)
반면에, 세상의 한 구석에서 누군가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을 때 세계는 창조된 가치를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__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고요하게. 그러나 점차 회전의 속도를 높이며, 세계는 조금씩,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며, 마침내 세상의 실체적인 변화들을 초래한다. (3)
이렇게 새로운 가치가 발견되어 '세계'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때'가 왔다고 니체는 말한다. 바로 짜라투스트라의 그림자가 군중이 모인 곳으로 날아와 "때가 왔다! 절호의 때가 왔다! (Es ist Zeit! Es ist die höchste Zeit!)"라고 외친 것이다. (4)
한편 이 주제를 다루는 본문의 끝부분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이 그림자의 정체에 대해 의혹을 표현하는데, 의혹을 표현하는 방식이 '때'의 도래를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끼게 한다:
"그럼 내가 유령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내 그림자였을 것이다...... 그걸 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대체 그 유령은 어째서 <때가 왔다! 절호의 때가 왔다!>라고 외쳤을까?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한 __절호의 때__란 말인가?>>"(5)
(1)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50
(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50
(3) '세계'와 '세상'이 맞물려 있음을 니체는 이렇게 암시한다: " (새로운 가치의 출현과 관련하여) 나는, 제왕(諸王)과 교회들과 그리고 연륜과 덕이 쇠약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이런 충고를 해준다__전복되기만 하라! (그러면 또 새로운 가치들이 출현할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최승자 옮김, p. 174
(4)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최승자 옮김, p. 172
(5)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최승자 옮김, p.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