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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한리 Chae Hanlee Mar 23. 2024

어두운 예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53

어두운 예언


한 예언자가 음울하게 말했다: 


"나는 커다란 슬픔이 인류에게 닥쳐오는 것을 보았다....... 모든 것이 헛되고, 모든 것이 똑같고, 모든 것이 지나간 것이다." (1) 


니체가 보기에 이런 허무주의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 염려와 감상적인 연민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실은 삶에 대한 무책임하고 게으른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삶의 진전을 방해하는 악의에 찬 태도이다.  이런 허무주의는 듣는 이에게 병적인 우울감을 안겨준다.  이 예언을 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짜라투스트라도 삶의 의욕이 사그라짐을 느끼고 절망에 빠져 탄식하지만, 동시에 그는 생명의 빛, 생명의 옹호자, 삶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생각하기에 이른다. 


"진정 머지않아 긴 어스름이 다가오리라. 아! 그렇게 되면 나 어떻게 나의 빛을 구해야 하나!  그것이 이 슬픔 속에서 질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좀 더 멀리 있는 세계와 더할 나위 없이 먼 밤을 비춰주는 빛이 되어야 하나니!" (2) 


'생명'이란 마치 춤을 추듯 도약하고 비상하며 경쾌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짜라투스트라가 말하는 '나의 빛'은 생명의 이러한 걸음걸음을 밝게 비춰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빛이다. 그러나 니체는 이 빛이 '어두운 예언'이 전파하는 슬픔 속에서 '질식'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어떻게 이 어두운 예언을 떨쳐버릴 것인가?  어떻게 이 어둠의 예언자의 마수를 벗어날 것인가?


생명의 경쾌한 걸음걸이를 방해하는 허무주의 예언자의 영혼은 마귀의 영혼과 다름이 없다고 니체는 생각한 것 같다.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예언하는 자의 영혼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떨쳐버리는 방법과 관련하여, 니체는 놀랍게도 예수와 흡사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제자들이여! 향연 (饗宴)을 베풀기 위해 준비를 하자!...... (어둠의) 예언자들도 함께 오라!  그리하여 내 옆에 앉아 같이 먹자!  나는 진실로 그들에게 그들이 빠져 죽을만한 깊은 바다를 가르쳐주리라." (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최승자 옮김.  pp. 175-176  최승자는 이 예언자가 쇼펜하우어라고 지적한다.  한편, 이 구절은 구약의 코헬렛(전도서) 도입부의 내용을 상기하게 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사랑도 미움도 인간은 알지 못한다.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이 허무일 뿐, 모두 같은 운명이다."  물론 솔로몬이 썼다는 이 글은 인생의 허무를 들어 하느님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면서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다.  "정녕 꿈이 많은 곳에 허무가 있고 말도 많다.  그러나 너는 하느님을 경외하여라." 코헬렛 5:6

(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승호 옮김, p. 228.  구약의 예언서인 이사야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이사야 8:23-9:1  마태오 4:14

(3)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156   신약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예수님께서 '가라'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마태오 8: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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