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퓨처리즘의 껍질과 허술한 코스믹 호러>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판타스틱4를 실사화하고자 한 시도는 여러차례 있었다. 그리고 그 대다수는 졸작, 내지는 범작 취급을 받았다. 분명 판타스틱4라는 캐릭터들의 정체성은 원작 코믹스에서 가져온 것이기에 그 캐릭터성은 어느 작품에서든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코믹스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한 것은 기본적으로 매력적인 세계관 자체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마블 유니버스 페이즈 6의 <판타스틱4:새로운 출발>의 경우는 이러한 과거의 실패는 답습하지 않는 모습이다. 특히 레트로퓨처리즘이라는 스타일을 도입함으로써 현실과는 다른 메타버스적인 세계관을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시도는 인상적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순간이동 기술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미래 기술을 선보이는 세계에서 1960년대와 같은 인류의 의복, 그리고 LP를 통해 사운드를 기록하고 듣는 등의 모습이 교직하는 것은 매력적인 배경을 구축한다.
초광속으로 은하계를 넘나드는 우주선을 탑승하고 초월적 존재인 빌런 '갤럭투스'를 만나러가는 순간, 영화가 보이는 연출은 상당히 복고적이다. 이는 마치 최초로 인류가 달을 향해 우주선을 쏘아올렸던 아폴로11을 향해 환호하던 당대의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카메라 렌즈에 레트로적인 질감을 입히고, 그 시절 의복을 차려입은 대중들을 비춘다. 카메라에 담기는 인류의 모습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우주선을 바라보며 과학적 성취에 환호하며 밝은 미래를 기대하던 과거의 미국인들과 오버랩된다.
그러나 공들여 그 토대를 잘 쌓아놓았던 영화는 결정적인 순간에 관객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분명 메인빌런 '갤럭투스'는 우주적 존재로 그 '코스믹 호러'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그 모습을 최초로 드러낸다. 지구보다도 거대한 행성을 내부로부터 파괴하며 그 모습을 드러내는 어마어마한 크기와 위용을 자랑하는 우주선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무자비한 파괴행위는 우주선 자체가 하나의 포식자로서 행성을 통째로 뜯어먹는 것과 같은 모습을 드러내는 연출이다.
그러나 정작, 이 무시무시한 빌런 갤럭투스와의 최후의 전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당혹감을 선사한다. 히어로 영화의 본질은 히어로가 강대한 빌런을 물리치고 인류를 구원하는 서사를 보기 위함이다. 그 누구도 히어로가 빌런을 물리치는 것을 이야기한다고 스포일러라 부르진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강대하다는 빌런이 얼마나 위협적이고 또한 매력적이느냐가 되겠다. 영화의 경우, 이 빌런의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내는 수단은 바로 그 거대한 크기로 행성을 통째로 부서어삼키는 우주선의 존재로, 그 행성과 맞먹는 거대한 크기 그 자체가 매력을 이끌어내는 존재이다.
그러나 정작 최후의 결투가 벌어지는 순간, 우주선은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 그 거대한 포식자는 '굳이, 구태여' 우주선에서 내려와 혈혈단신으로 지구에 내려온다. 그럴만한 이유가 존재하긴 하지만, 설득력은 다소 부족하다. 분명 갤럭투스가 홀로 내려오기 전에 판타스틱4는 그를 어떻게 목표지점으로 유인할 것이냐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당연히 관객의 입장에서는 '우주선에 탑승한' 갤럭투스를 어떻게 지상으로 끌어내릴 것이냐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만든다. 그러나 정작 갤럭투스가 지구에 강림하는 순간에 이는 허무하게 해소되어 버린다. 이 편의적인 선택에 관객의 맥은 풀어진다.
결론적으로, <판타스틱4:새로운 출발>은 매력적인 세계관 자체는 구축하는데에 성공한 작품이다. 근래 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작품 중 이 세계관 구축 자체에 실패하여 혹평을 받은 작품이 적지 않았음을 상기해본다면 이는 분명 박수쳐줄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잘 구축해놓은 서사의 발판 위에 방점을 찍는 것은 등장인물의 매력이다. 위압적인 크기와 그야말로 '신'으로 인식될 정도의 파워를 자랑하는 '코스믹 호러'적인 빌런이 연출자의 편의성으로 인해 '멍청한' 선택을 하는 순간 극의 매력은 크게 떨어져버린다.
아무튼 영화는 대체적으로 '새로운 출발'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시도를 했다. 이제 그 멀티버스를 바탕으로 한 세계관 자체는 구축하였으니, 새로이 그 위에 기둥을 세우면 된다. 영화는 쿠키에서 <어벤저스:둠스데이>의 등장을 예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벤저스:둠스데이>는 그 마블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다시 캐스팅하여 대중들에게 환호를 이끌어냈던 작품이다. <판타스틱4:새로운 출발>의 복고주의라는 스타일의 선택은 이를 연결지어 보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그 전성기를 이끌었던 캐릭터들의 서사와 성격, 그리고 가치관을 떠올리고 이를 시나리오에 담아낸다면, 마블은 그 과거 전성기에 버금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아직 이를 완벽히 돌이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가능성은 드러냈다고 보인다. 어쨌든 마블은 다음 작품을 찍어낼 것이고, 또 이는 극장에 걸릴 것이다. 과연 그 과거를 회복하고자하는 부단한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될 지 그 귀추를 주목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