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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끝낼까 해 단평

<타인이 되지 못한 채 닳아버린 그대여>

by 조성현

https://youtu.be/er1PMmp_KVw?si=bAvBfsxFJHNPS_GV

<Nothing But Thieves - Soda>

세월은 마부가 되어 회한이라는 마차를 몰고 온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두뇌는 과거를 끊임없이 회상한다. 만일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아졌을까라는 의미없는 가정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마침내 그 회한들이 쌓이고 쌓이면, 인물의 주름은 깊어지고 심술궂은 말들이 입가에 묻는다.


시인 기형도는 기이하리만큼 그의 작품에서 노인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의 시 <늙은 사람>은 노인을 탐욕스럽고도 혐오스러운 존재로까지 묘사한다. '단 한 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라는 구절을 통해 그는 노인의 시선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매몰찬 멸시마저 던진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은 결국 시간이 흐름에 거스를 수 없는 운명론에 대한 회한이자, 두려움 그리고 나아가 거스를 수 없는 무기력함으로 비롯되는 자기혐오라 볼 만하다. 그 누구도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우리의 지나가는 오늘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이다. 그 역시 이를 결코 거스를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는 <장미빛 인생>에서는 그 공격적인 시선으로 노인을 바라본 끝에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라는 구절로 마무리지은 것이리라.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스물 아홉이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기에 그 굴레에서 벗어난다.)


선곡은 'Nothing But Thieves'의 <Soda>이다. 소파에 눌러앉아 싸구려 담배와 탄산음료를 몸 속에 밀어넣으며 자기혐오에 침잠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특히나 후렴구에 등장하는 'I wanna be someone else.(다른 누군가가 되고만 싶어요.)'라는 가사를 영화와 시로 연결하는 순간 실소가 터져나온다. 참으로 적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다.' 만일 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과연 누가 되고 싶을 것인가. 어떤 이는 연예인을 이야기할 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재벌이나 백만장자를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노인은 젊은이를 택한다.'


찰리 카우프만 감독은 <이제 그만 끝내려 해>를 통해 이 회환을 정면으로 다룬다. 한 남녀가 만나 눈보라치는 시골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시종일관 울적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들이 만나는 순간, 즉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어느 정체모를 노인은 그들을 보며 괴이한 문장들을 중얼거린다. 더불어, 분명 그들은 대화를 나누지만 대화는 어긋난다. 여성은 홀로 생각한다. '이제 그만 끝내려고 해.' 그 생각을 시작하는 순간, 남자가 틈입한다. 마치 그녀의 생각을 멈추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듯.


그렇기에 관객은 이를 보는 순간, 한 남녀의 애정이 종말을 고하는 순간을 다루는 것이라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러나 극은 그 두 남녀의 끝에 집중하지 않는다. 어긋나버린 채 소음처럼 맴도는 대화는 둘만에게서 포착되지 않는다. 남성, 제이크의 부모와 함께하는 환담에서도 역시 말들은 맞닿지 않는다. 식자적인 면모를 뽐내며 예술과 철학에 관한 이야기 뿐만이 아니다. 제이크와 루시(여성의 이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드러나지 않지만, 제이크는 그녀를 '루시'라 부른다.)이 만나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주 범용적인 연애사에 관한 대화 역시 '지너스'이냐, '지니어스'이냐와 같은 의미없는 이야기로 대화는 휘발된다.


이 오묘한 식사자리가 끝나고 난 뒤에 가지는 디저트 타임에서 중요한 키포인트가 순간 지나간다. 제이크의 어머니가 '이명'에 시달린다고 호소하는 순간이 그것이다. 한국어 자막으로는 '이명'으로 번역되었지만, (그리고 문맥상으로 맞기는 하지만) 원문은 '타나토스', 즉 죽음의 신이다. 이는 일종의 말장난이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 느껴짐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노환이 찾아온다는 것은 동시에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에 닿기 위해 쌓아나간 바벨탑과 같이 세월은 그 시름과 기억을 쌓아 거대한 탑을 이룬다. 바벨탑은 천국을 향하지만, 세월은 죽음을 향한다는 것이 그 차이점일 것이다.


그리고 극이 진행됨에 따라 초반부 등장한 노인의 정체가 폭로되고 그가 중얼거리던 각종 문장들의 의미가 관객에게 선사될 때, 이 우울함은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노인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하던 청소부이며, 학생들에게 기피되는 대상이다. 그는 젊은 학생들에게 선망의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무시로 일관하거나, 경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렇다. 단 한 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하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였다면, 그는 다른 선택을 하였을지 모른다. 적어도 자신을 '몸에 구더기가 낀 돼지'라며 자책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회한과 자기혐오를 진득하게 뒤집어쓰고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내린다. 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돌이킬 수 없다. 받아들여야만 한다. 귓가를 향해 소곤거리는 '타나토스'를 물리치기엔 이제 그는 기력이 없다. 축조된 탑의 꼭대기에서 그는 목적지에 다다르고 구조물은 붕괴된다. 그렇게 막이 내린다. 다른 누군가가 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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