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뻣뻣했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워졌다.
밤늦게 발리 응우라이 공항에 도착했다.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느린 공기, 수많은 택시 틈을 지나 짱구로 향했다. 이번에 예약한 숙소는 짱구 중심지에서 살짝 벗어난 곳, 수영장이 있는 호스텔이었다. 늦은 시각이었기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눈이 일찍 떠졌다. 슬프게도 노예 시절 습관이 아직 몸에 베여 있다.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밖으로 나가보니 논밭이 펼쳐져 있었고 햇빛은 맑고 따뜻했으며 공기마저 기분 좋게 가벼웠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아, 내가 정말 발리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느슨해지고 편안해졌다. 그건 아주 오랜만의 감각이었다.
짱구는 발리에서 가장 ‘핫’한 동네다. 전 세계에서 온 ‘핫’한 사람들이 붐비고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경적을 울리고 매연이 거리를 가득 체우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신경질 나지 않았다. 그날의 나는 그 시끄러움마저 좋았다. 무작정 길을 걸었고 아침 먹을 곳을 찾았다.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건너편 브런치 카페에 들어갔다. 브런치 부리또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카페 직원은 놀라울 만큼 친절했고,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고 입맛에 맞는지도 살펴보며 예쁜 미소까지 곁들였다. 물론 이건 그들의 일이겠지만 그래도 고객 입장에서는 기분이 참 좋았다. 그 따뜻함이 나를 조금씩 녹이고 있었다.
식사를 하며 그날 하루를 고민하다가 근처에 요가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찾아가 보기로 했다. 건물 1, 2층은 코워킹 카페였고, 3층은 루프탑 요가 공간이었다. 노트북을 펴놓고 조용히 일하는 사람들, 각자의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디지털 노마드들. 그들 사이를 지나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내 작은 희망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가 수업이 열리는 루프탑에 올라갔다. 사방이 뚫려 있었고 파란 하늘과 새소리가 나를 반겼다. 뻣뻣한 몸으로 수업을 따라가는 건 쉽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이 참 좋았다. 행복했고, 조금 울컥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이완되고 있었다.
오후에는 비치클럽으로 향했다. 햇살 아래 수영을 하고, 해가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게 발리에서의 첫날이자 새로운 희망이 아주 조용히 피어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