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보인다고 괜찮은 게 아니다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보더니, 이제는 안 아팠던 거 아니냐는 눈빛까지

by gogogigi

병가를 마치고 복귀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나는 경위서를 쓰라는 통보를 받았다.
누가 봐도 감정이 실린 방식이었다. 복직 직후, 건강 문제로 병가를 사용하고 돌아왔을 뿐인데도, 그 ‘절차’가 문제였다며 징계의 언어를 들이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직속 상사’에게 직접 보고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그 상사와의 관계는 병가 전부터 이미 감정의 균열이 있었고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생에 처음으로 뇌검사를 위해 응급실까지 방문했었어야 했다. 조직 내 다수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나 또한 보고 체계를 무시하려 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공식적으로, 더 윗선에게 정중한 보고를 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조직은 누가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기분이 상했는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경위서를 써야 했다. 보고 체계 미준수라는, 조직의 ‘감정’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경위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처음엔 웃음이 났다. 처음에는 ‘건강하게 돌아와서 다행’이라더니, 이제 와선 ‘왜 그 과정에서 상사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았냐’며 문책하는 모양새였다. 내가 멀쩡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체면이 내 회복보다 우선인 세계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다음 날은 조금 평화로웠다. 문제의 상사는 출근하지 않았고, 팀 내 분위기도 상대적으로 부드러웠다. 오후엔 한 동료의 송별회가 있었다. 간단한 저녁 모임이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내내 두 가지 감정을 오갔다. 웃고 떠드는 표정을 하면서도, 머릿속엔 그 전날의 문장들과 무력감이 떠올랐다. 이 조직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겨냥할지 알 수 없다는 긴장감이 나를 계속 옥죄었다. 회식 자리에선 다들 웃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런데 그 웃음이 내겐 배경음처럼 느껴졌다. 전혀 연결되지 않는 장면 속에 혼자 잘못 끼어든 엑스트라처럼.

그리고 나는 알게 됐다. 이곳에선 잘 지내는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그렇게 복직 후 일주일이 지나갔다. 누군가는 “별 일 아니었잖아”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겨냥한, 조직의 조용한 배척이라는 걸.


정면으로 싸우지 않지만, 어깨너머에서 흘겨보고, 단체에서 살짝 밀어내며, 결국엔 "너 스스로 나가"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


나는 맞서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사람은, 조금 덜 외롭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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