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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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니의 놀이터


친구와 우정편지를 나누었던

오글거리는 시절이 있었다.


남녀공학인 중학교를 다녔는데

사춘기 소녀들이

닥치던 대로 책을 읽어대곤

떠오르는 상상력을

수다만으로 감당하지 못하던 시절


TV 채널도 3개뿐이었던 옛날이야기라

공감하기 어렵겠지만


그땐

그래서 책을 많이 읽었다.


나와 생일까지 같은 친구가 있었는데

준아라는 이름이었다.


같은 반이고

매일매일 수시로 떠들어대는 단짝 친구였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혼자 있을 때만

읽기로 했던 건지....


어느 날

작가 전혜린의 작품을 읽고 심취했던

우리는

죽음 나이 요절 이런 단어에 꽂혀 있던 터라

편지엔 거창하고 건방진 표현들이 가득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찬란하고 화려하게 짧고 아름답게 살고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는 꿈을 꾸었더랬다.


나는

30까지만 나이를 셀 거야....


중학교 3학년의 우리는

30이라는 숫자는 굉장히 먼날이었을 것이다.


쓰레기 소각장에서

학생주임샘이

혼자 편지를 읽고 있던

나를 발견하곤 조용히 편지를 압수했다.


하필이면

이름이 준아여서

연애편지라고 단정하시고는

설교를 한참 들었더랬다.


30까지만 센다던

내 나이가 어느새

그 두 배의 숫자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보다 2살이 많은 친구 하나는

나이를 대화주제를 삼으면 경기를 하듯 질색을 한다.


나이 먹는 게 싫어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어하는 것이다.


한국나이라는 것을 오래 쓰다

갑자기

만 나이를 공식화하고

빠른 나이 까지가 엉키다 보니


나이를 물으면

한 개의 숫자가 아니라

몇 살에서 몇 살까지를

말하는 나름 현명한 대답을 하는 게

유행이란다.




30세 생일던 날

난 편지를 뺏겼던 그날을 생각했다.


나이를 의식하며 사는 게

별 의미기 없을 수 있지만


어느새 사회적으로는

그다지 쓸모가 없어지는 나이가 되었다.


앞으로 남겨진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보다 훨씬 가속이 붙어 지나갈 테지.





100세가 지나도

어른의 모습으로 남는 행운이 쉽게 오지 않을 테지만


나이를 더할수록

더 노력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