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안전해서, 나는 엄마에게 제일 잔인해진다

by 앤희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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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이유 없이 짜증이 난다.

말 한마디에도 날이 서고, 사소한 질문에도 괜히 예민해진다.
아마도 그건 편해서일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결국 나를 이해해 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어서.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게는 차마 하지 못할 말을 가족에게는 쉽게 던진다.

상처가 될 걸 알면서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오늘, 문득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밉고 만만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는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사람들을 이해시키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직장에서는 상사를 이해시켜야 하고,
고객을 이해시켜야 하고,
제휴사와 상황을 조율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는
애인을 이해시켜야 하고,
친구를 이해시켜야 한다.


말을 고르고, 표정을 관리하고, 상대를 납득시키며 살아간다.
나보다는 ‘상황’을 먼저 생각하면서. 그러다 보니 하루가 끝날 즈음, 집에 돌아오면

이미 마음은 녹초가 되어 있다.

더 이상 설명할 힘도, 누군가를 이해시킬 여유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가족 앞에서는 말이 거칠어지고, 감정이 날것으로 튀어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숨이 막히고, 동시에 나 자신이 안쓰러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에게 날이 선 말들을 던져도 괜찮아지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가장 아픈 말을 먼저 꺼내는 건
결국 내가 가장 후회하게 되는 선택이라는 것도.

지쳐 있다는 이유로, 힘들었다는 이유로 가족에게까지 이해받으려 들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다.


지금은
부드럽게 말할 힘조차 없을 만큼
지쳐 있을 뿐이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다 써버린 채 돌아서도 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언젠가는

조금 덜 예민한 얼굴로, 조금 덜 날 선 목소리로 가족 앞에 서고 싶다.


오늘의 나는
그러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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