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스토너가 되었다

번아웃의 밤에 건네받은 조용한 위로

by 앤희베르



그렇게 하루하루

무너진 마음을 주워 담고 살아가고, 또 무너지는 날들을 꽤 오랫동안 반복했던 것 같다.

번아웃.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번아웃이,
사실은 이미 내 안에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너져 있었고, 지쳐 있었고,
그저 하루하루를 똑같이 살아내는 것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분명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한 발짝씩, 내 속도로,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책이 있었다.
스토너


사실 이 책의 존재조차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홍진경 님이 인생책으로 소개하는 방송을 우연히 보았고,
그때 처음 이 책에 관심이 생겼다.


나는 홍진경 님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유쾌하고 웃기는 사람으로 기억하지만,
나는 그분만의 철학과 삶의 태도를 존경한다.

자존감이 높고, 책을 많이 읽으며,
자신의 콤플렉스조차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그 당당함이 참 멋지다.

그래서 누군가 닮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홍진경 님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분의 추천으로 스토너를 읽기 시작한 밤,
나는 그 책 속에서 나를 만났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애쓰던 내 마음을
그는 아무 말 없이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의 삶은 조용했다.

화려하지 않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는 끝내 자기 자신으로 살아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 속에서도
그는 하루하루를 묵묵히 견뎌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는 내 안의 침묵과 마주하게 되었다.
성과, 평가, 눈치, 경쟁.

그래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나의 하루가

그가 걸었던 고독한 길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스토너는 말없이 말해주었다.


“살아간다는 건, 때때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의미를 견디는 일이다.”





그 문장이 가슴 깊숙이 닿았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그건 아주 오래된 침묵의 언어 같았다.


나는 지금껏 너무 많은 무게를 혼자 짊어졌고,
그 무게 아래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사람인 척 웃으며 살아왔다.

누군가 “넌 괜찮잖아.”라고 말하면
정말 괜찮은 사람처럼 굴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스토너는 그 모든 가면 너머의 나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몰라줘도, 박수를 받지 않아도,
내가 살아낸 하루가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
그는 조용히, 단단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비로소 나 자신을 안아주었다.


“괜찮아.
지금껏 잘 살아왔고,
조금 무너져도 돼.
넌 지금, 스스로를 살아내고 있는 중이야.”


그 말이 정말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스토너는 내게 삶의 정답을 주진 않았다.

대신, 살아간다는 것의 고요한 품격을 보여주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그 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던 것 같다.
그저 그 안에 잠시라도 머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으니까.


어느 날은, 내가 스토너가 된 것 같기도 했다.
그 삶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 말했다.

"수고했어. 정말 잘 버텼어."


스토너는 그렇게,
소리 없이 조용히 내 곁에서 말해주고 있었다.



그 삶도 너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삶의 고비마다 조용히 곁에 와준 책들이 있었다.

시크릿, 연금술사, 스토너

그들은 말없이 내 손을 잡았고,

나를 위로하며 더 넓은 세상의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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