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왜 이토록 길게 느껴지는 걸까. 시간은 멈춰 있지도 않은데, 나는 제자리에서 맴도는 느낌이었다.
지금 나에게 뭐가 남았지? 잘하는 것도 없고, 뚜렷한 목표도 없었다. 스펙도, 배경도, 특별한 재능도 없이 그저 그런 사람. 나는 그런 평범한 삶에 크게 불만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실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느 조용한 골목 어귀에서, 희미한 빛이 스며 나오는 걸 보았다.
뭐지? 간판도 없고, 조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빛은 분명히 거기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향했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몸이 먼저 반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앞을 그냥 지나쳤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지 않는 건가? 정말 나만 보이는 건가?
가까이 다가가자, 희미한 금빛 글씨가 떠올랐다. “희망을 파는 문구점.”
이상했다. 분명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간판은 없었다. 눈을 비볐다. 그런데도 분명히 적혀 있었다.
나는 문 앞에 섰다. 손잡이를 잡았다.
이 안에 뭐가 있는 거지?
평소 같으면 그냥 돌아섰을지도 모른다.
두려움 앞에 늘 멈칫하던 내가, 오늘은 달랐다.
삐걱—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나는 숨을 삼켰다.
노트와 다이어리, 펜과 편지지들이 공중을 천천히 떠다니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이상한 공간이었다.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살짝 설렜다.
그리고 그 공간 한가운데, 아무 이름도 적히지 않은 다이어리 한 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이어리는 공중에 가만히 떠 있었다. 이상하게도 많은 노트들 중에서 그 한 권만, 유독 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이름도, 어떤 문장도 쓰여 있지 않았는데도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다이어리에 닿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고
공중을 떠다니던 펜들과 편지지들이 한순간에 멈췄다.
공기가 변했다. 숨이 막힐 듯한 정적이 밀려왔고, 설명할 수 없는 서늘함이 온몸을 감쌌다.
‘안 돼.’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다이어리를 움켜쥔 채 그대로 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 감정은 익숙했다. 불안, 두려움, 낯선 걸 마주할 용기가 없는 나.
늘 그랬듯, 도망치는 쪽을 선택했다.
뛰어나와 골목으로 나서는 순간, 그 공간은 사라졌다. 빛도, 간판도, 문도.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기 있었던 문구점이 이젠 어디에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저 낡고 평범한 벽돌 건물과 쓰레기통, 그리고 고요한 밤뿐이었다.
말이 안 돼. 내가 뭘 본 거지?
그런데, 손에 무게가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내 손엔…그 다이어리가 그대로 들려 있었다.
없어졌어야 할 그것.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내 손안에 있었다.
심장이 다시 요동쳤다.
“이건 뭐지… 왜, 이건 없어지지 않는 거야…?”
문구점은 사라졌지만 그 다이어리는 현실 속에 남아 있었다.
왜 어떤 사람에겐 그 문이 보이고, 어떤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걸까요?
싱클레어에겐 데미안이 필요했고,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에겐 연금술사가 필요했듯이, 그녀에겐 ‘앤희베르’가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소녀는 사실 또 다른 나이고, 또 다른 당신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안의 문을 발견하고, 잊고 있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문은, 분명 우리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