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로 살고 있니?

사라진 문구점에서 시작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by 앤희베르
Draw a Korean woman with a melancholic expression, her eyes looking straight ahead, standing in a crowded elevator. The elevator is metallic and dimly lit, with various people of diverse ages and appearances subtly.jpg



회사는 여전히 똑같았다. 사람들도, 반복되는 업무도, 창밖 풍경도. 그런데 오늘따라, 모든 게 조금씩 어긋나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서로 말없이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 틈에 나도 섞여 있었다.

천장에 붙은 조명이 희미하게 깜빡였고, 문 쪽 스테인리스 벽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처럼 무심히 지나쳤을 모습인데, 그날따라 그 반사된 내가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도 나로 살고 있는 걸까?”


어제 봤던 그 다이어리 속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너는 너로 살고 있니?”


그 문장은 자꾸만 내 귓가에서 속삭였다. 잊으려 해도, 문득문득 들려왔다.
사라진 문구점의 기묘한 공기까지,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도 모를 그 장면이 자꾸 마음 어딘가를 건드렸다.

점심시간, 조용한 카페 구석에 앉았다.
익숙한 자리, 익숙한 커피였다. 그런데 커피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머그잔 부딪히는 소리, 잔잔한 음악까지 모든 게 무음 처리된 영화 같았다.


“나는 그 속에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기분이었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테이블 유리에 비친 내 눈동자를 마주쳤다.
그 안에 내가 있긴 한 걸까?

그때, 이상하게도 창밖 도로에 잠깐 반짝였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 의미 없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 작은 불빛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는 아직 너를 다 만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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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피곤한 얼굴로 핸드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나는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익숙한 얼굴인데, 왠지 내가 아닌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다이어리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어제, 그 문구점에서 가져온 다이어리. 사라져 버린 문구점. 그리고 그 한 문장.

나는 조용히 일어나 서랍에 넣어둔 다이어리를 꺼냈다.
표지를 만지자 손끝이 살짝 떨렸다.
아무도 없는 밤,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이 이상한 비밀이 지금도 내 현실을 뒤흔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이어리를 펼쳤다.
어제의 문장이 그대로 있었다.


“너는 너로 살고 있니?”

나는 그 아래에 작게 적었다.

“아니, 나도 이제 잘 모르겠어. 하지만... 알고 싶어.”

진심으로, 처음으로, 어색하지만 나는 나를 알고 싶었다.


그날부터 나는 다이어리에 하루하루 내 마음의 조각들을 적어내려 갔다.

어떤 순간에 설레는지,어떤 공간이 편안한지,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별것 아닌 사소한 것들까지도 천천히, 정성스럽게 써 내려갔다.

그 시간은 마치,처음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이 서로의 취향과 표정을 하나하나 관찰하듯,
나는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밤,잠든 내게 길고 뜨거운 꿈이 찾아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발밑은 뜨거운 모래로 이글거렸고,머리 위 태양은 무겁게 짓눌렀다.


_A girl walking alone in a vast desert, reaching toward a distant glowing shop on the horizon, shimmering heat waves, soft surreal atmosphere, poetic and cinematic illustration style, warm golden tones_.jpg



숨조차 쉬기 힘든 더위 속에서 나는 땀을 흘리며 걸었다.

누군가를 찾으러 온 걸까?
정말 나 혼자인 걸까?

아무도 없었다. 정말, 아무도. 무서웠다.

이게… 꿈일까? 현실일까?
구분할 수 없었다. 그냥, 끝없는 모래 위를 나 혼자 걷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에서 빛이 보였다.

익숙한 빛. 희미하지만 따뜻한, 내가 너무도 그리워하던 그 빛.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땀과 숨을 몰아쉬며 그곳으로.

하지만 이상했다. 가까이 갈수록 빛은 자꾸 멀어졌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았는데, 또다시 멀어졌다.


희망을 파는 문구점. 그곳이 분명했지만, 손끝에 닿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도 원했던 곳. 그런데 왜 자꾸 멀어지는 걸까?

꿈에서 깨어났지만, 가슴 안에 남은 감정은 그대로였다.

갈증.
정체 모를 결핍감.
그건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허기였다.



나는 침대에 그대로 누운 채,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꿈일 뿐인데, 왜 이렇게 슬플까.왜 이렇게… 아플까.

손끝이 저절로 움직여, 다시 다이어리를 펼쳤다.글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종이 위에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적었다.


“그 빛은 왜 자꾸 도망치는 걸까.”
“나는…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자꾸 무언가를 좇고 있는 걸까.”

“하지만 멈추고 싶지 않아.내가 나를 만나기 전까진, 이 여정을 끝낼 수 없어.”


그렇게 또 한 장을 넘기고, 또 한 장을 썼다.
나는 매일매일 내 안을 탐색했다.
어떤 날은 무기력했고,어떤 날은 잠깐의 희망에 기대도 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는 나를 처음 만나는 중이었다.








사막에서, 그녀가 보았던 것은 사실 외부의 장소가 아니라 내면의 상태였다.

빛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아직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잡히지 않았던 것.

희망을 파는 문구점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건 우리 안에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문.

그 문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문은 자신을 껴안은 자만이 열 수 있는 내면의 입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 문 앞에 서 있다. 그 문은 멀지 않다.
그리고 당신 또한 그 문을 찾아 지금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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