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계산하지 못하는 괴로움
계산적인 관계라면 나의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는 것이 되겠죠? 그걸 위해서 타인에 대한 판단이 앞서야 할 것이고요. 저는 타인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걸 극도로 꺼리는데 아마도 판단이라는 단어가 갖는 종결적인 어감 때문인 것 같아요.
동물적인 직관으로 자주 판단을 내리고, 그 감각이 꽤나 정확함에도 불구하고 저의 직관을 애써 흐려가며 사람들을 지켜봅니다. 한 사람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배제하고 싶지 않은 이유 탓이에요.
제가 지속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 첫인상과 현인상이 다른 분들이 많아요. 첫인상은 뭐랄까. 한 사람을 볼 때 떠올리는 무수한 단어들 중에 제일 큰 키워드라고 말해볼게요. 누구나 그렇듯 저 역시도 제가 지금 아주 좋아하는 친구들도 첫인상부터 좋아하진 않았어요. 그 중 첫인상을 기억하는 2/3의 사람들의 첫 단어를 뜯어보자면,
'날카롭다','깐깐하다','재미없다','조용하다','눈치를 살핀다'
의 것들이 있는데요 이런 성격들은 제게 매력적이진 않았거든요. 솔직함을 더 얹자면, 나머지 1/3의 친구들 역시 제 눈길을 끌었던 것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한 번 보고 만 사람들의 첫인상이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밍숭맹숭한 첫인상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처음 이목을 끌었던 대표 키워드가 아니라 그 아래 가려진 하위 키워드가 더 잘 보이는 일을 경험해요. 마치 워드클라우드처럼,
검색량이 늘수록 키워드가 커지듯,
제가 이 사람에게 주목하는 지점의 키워드가 현재의 그 사람의 대표어가 되는 거죠.
이렇듯 직관이라는 순간적인 감각에 시간이라는 변수를 넣으니 인간관계의 계산식이 풀릴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짧은 시간에 저 사람이 줄 득실을 판단해서 나의 행동을 조작한다는 게 저는 너무 싫어요. 이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스스로를 위해 계산적이려고 애써봐도 쉽사리 정신승리가 안되네요.
사람을 얼마든지 가려 사귀고 멋대로 판단해도 된다고 저를 설득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