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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에 들어갔고, 나는 길을 잃었다.

괜찮아. 다른 길을 가면 되지.

by 쿠요

고등학교 때 나는 큰 수상경력이 2개가 있었다.

전국과학토론대회에서 대상,

전국지구과학올림피아드에서 금상.


내가 있던 고등학교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모여있었고, 나는 대회들을 준비하느라 내신점수가 그리 좋지 않았다. 나에게 있는 두 개의 상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수시모집이었다. 내신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수시로 넣었던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는 보기 좋게 떨어졌지만 그 당시 내신보다 면접점수를 더 중요시하게 여겼던 카이스트에 합격했다. 나의 공대생활의 시작이었다.


카이스트의 1학년은 무학과로 기초수업들을 다 듣고 난 후 2학년에 내가 가고 싶은 과를 선택해서 가게 된다. 그때 함께 공부했던 동기들은 대부분 과학고를 조기졸업하고 온 친구들이었고, 그 친구들은 1학년 때 배우는 대부분의 기초수업들을 이미 고등학교에서 다 배우고 온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지구과학만 공부했던 나는 1학년 때 배우는 기초 수업 (물리, 화학, 생물)은 전혀 기초지식이 없어 정말 혼란스러웠다. 심지어 모든 수업이 다 영어라니.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는데, 용어까지 너무 생소해서 단어의 뜻만 찾다가 수업이 끝난 경우가 허다했다.


나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나는, 지구과학이 좋았는데.

나의 대학교 1학년의 생활은 고등학교 때 꿈꾸던 순수한 지구과학 학문의 세계와는 꽤 멀었고 우선 나에게 주어진 학점이란 과제를 해결하기 바빴다. 그렇게 나는 어차피 무학과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동아리도 들어가고 과제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을 시작할 무렵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어떤 과를 정해 진로를 결정할 것인가.

이때만 하더라도 대학교 때 과가 결정되면 나의 진로가 엄청 크게 결정되리라 생각했다. 일생일대의 고민 중에 결국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효선아. 네가 하고 싶은 게 천문학자이고 우주를 알아가고 미확인생물체를 찾아내고 싶은 일이라면 전자공학과에 들어가서 통신의 기본을 배워보는 게 어떻겠니.”


그렇게 나는 카이스트의 전기 및 전자공학과로 들어가게 된다.

이유는, 우주의 미확인생물체에 대한 연구를 하려면 나는 통신을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학과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친구들이 공통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

“너는 무슨 과에 갈 거야?”


한창 꿈을 꾸던 시절.

대학교에 가면 무언가 특별한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시절.

그 시절에 너는 어떤 이유로 어떤 과에 가는지 우리는 얼마나 궁금했을까.

단순히 돈이 되니까, 아니면 그냥 잘 모르겠어서,라는 이유가 아닌 특별한 이유와 신념을 쫓아 과를 선택하는 친구들을 우리는 내심 멋있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전자과를 선택한 이유를 특별한 듯 말했다.


“나는 천문학자가 될 거라서! 통신을 공부하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


그 한 마디를 말하던 게 나에게 얼마나 큰 자랑거리였는지.




한창 천문학자가 될 거라 말하고 다녔기 때문일까. 자기도 우주를 공부하고 싶다는 친구가 생겼다. 나와는 다르게 물리학과를 선택했던 그 친구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같이 공부해 보자. 서울에서 하는 우주 관련 세미나가 있는데 그 포럼을 함께 준비해 보지 않을래?”


그 제안에 나는 흔쾌히 응했고, 학교에서 관련 수업이 없더라도 도서관에 가서 스스로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미확인생물체를 찾는 통신에 대한 공부를 시작을 하면서 조금씩 내 안에 거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재미가 없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 공부를 하고 싶어야 하는데. 나 이거 공부하고 싶어 했던 거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분명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이 공부를 하고 싶어서 계속 책을 보고 싶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하고 싶지 않을까. 그렇게 알 수 없는 마음으로 포럼을 준비하던 도중 혼자 캠퍼스를 산책하다가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내가 천문학자를 안 한다 그러면 어떡하지? 그럼 나도 꿈이 없는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은 거 아닌가?’


그 질문에 스스로 불현듯 놀랐다.


‘왜 내가..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아지는 걸 거부하지?’


그러자 갑자기 깨달았다.


아, 나는.. 사실 진짜로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구나.

나는… 남들이 나를 특별하게 봐주기를 바랐구나.

나는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었구나.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지구과학을 선택했고, 대학교에 와서도 다른 친구들이 꿈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나는 명확하고 독특한(혹은 특별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했구나

나는 정말로 천문학자로 우주를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는 통신을 통해 미확인생물체를 발견하는 천문학자가 될 거야!라고 말했을 때 오는 상대방의 반응을 좋아했던 거구나.


나 … 사실 남들과 똑같구나.

나, 꿈이 없구나.

나, 특별하지 않구나.


그걸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내가 얼마나 교만했는지를 마주한 나의 첫 순간이었다.



울음을 멈추고 목이 메인 소리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저 천문학자가 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와서 천문학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는 이런 나를 다 예측하셨던 걸까.


“괜찮아. 다른 길을 가면 되지.”


별 다른 말은 없었다.

그 한 마디에 나는 다시 걸어가기로 했다.



대학교 2학년.

전자과를 막 선택한 나는 길을 잃었다.

특별함을 잃었다.


그리고 … 그냥 그걸 인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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