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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지구과학을 만났다.

나는 별을 보면서 살고 싶어

by 쿠요

“나는 별을 보면서 살고 싶어.”


고등학교 1학년. 통합과학 시간에 처음으로 지구과학을 만났다. 물리, 화학, 생물 그리고 지구과학 중에서 지구과학 공부를 처음 했던 나는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지구를 공부한다는 사실에 한껏 마음이 설렜었다.

“내가 밟는 이 땅을 공부했어.”

“땅 아래는 이렇구나.”

“바다가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니.”

“하늘은 너무 신비로워!”


하지만 그 당시 지구과학은 수능으로 대학을 가기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이 아니어서 비인기 과목이었기에 일반고에서는 학교 수업이 개설되지 않았다. 즉, 내가 지구과학을 선택해 수능을 보려면 나 혼자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무슨 마음이 들어서 그 당시 18살의 소녀는 과감하게 남들이 하지 않겠다고 했던 지구과학을 혼자 공부하겠다고 했을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근처 과학고의 선생님을 찾아갔다.

“저 지구과학 공부하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당황스러울 일이다. 갑자기 잘 모르는 학생 하나가 찾아와서 가르쳐 달라니. 감사하게도 자신의 학생이 아님에도 당당하게 찾아갔던 나에게 흐뭇한 웃음을 지으시던 선생님은 책 한 권을 주셨고, 나는 그 책을 소중하게 받아와서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업은 없었지만 통합과학을 가르치시던 우리 학교 지구과학 선생님을 날마다 찾아가며 계속 질문하면서. 그러다 해결이 안 되면 과학고 선생님을 또 찾아가서 질문을 하고 문제를 받았다. 심지어 인터넷강의가 보급되지 않았던 때여서 좋은 강의를 찾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지구과학의 여러 파트 중에서도 나는 밤하늘을 보는 게 좋았다.

당시 봤던 영화 "콘택트(칼세이건)" 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If it's just us, it seems like an awful waste of space. 우주에 만약 우리만 있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겠지."

이 대사를 들었던 18살의 나는,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우주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그 모든 것을 관찰하고 볼 수 있는 학문이라니.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니. 너무 멋지지 않을까. 내가 우주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던 시점이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였을거다. 지구의 대기권을 넘어 저 우주 어딘가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지는 않을까? 저 별은 무슨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수많은 천문학자들은 어떻게 그 옛날 별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학교에서 야자(야근자율학습)를 마치고 밤 10시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때때로 벤치에 누워서 하늘을 보곤 했다. 오늘 저 달은 무슨 달이고, 그 별은 무슨 별일까. 별 하나에 ‘효선이별’ 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면서.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의 나는 우주소녀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없이 무언가를 혼자 공부한다는 건 꽤나 힘든 일이었고, 스스로 공부하는 게 힘들어질 때쯤, 학교에서 나와 함께 지구과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2명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학교 수업 시작 전 한 시간씩 일찍 만나서 같이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매일 7:30분까지 학교를 갔고, 빈 교실에서 우리 3명은 지구과학 경시대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강요도 아닌, 우리들의 자발적인 시도였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시도를 선생님들이 많이 배려해 주셨다.


그렇게 호기롭게 나는 대전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지구과학 경시대회를 나갔고, 그곳에서 나는 과학고 아이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1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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