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행복했던 이유
어릴 때부터 살던 우리 집은 굉장히 시골이었다.
집 뒤는 산이었고, 집 앞은 개울이 있었으며, 개울 주변은 논이었다.
주변에 불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집 불을 다 끄고 나면 칠흑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어릴 때, 불을 다 끄고 들어오는 엄마한테 물은 적이 있다.
'엄마, 이렇게 깜깜한데 안 무서워?'
'우리 집인데 뭐가 무서워'
엄마는 안심하라는 듯 웃으며 답하셨다.
2023년 아빠가 돌아가시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지내던 중, 어느날 엄마가 말했다.
'깜깜한 집이 왠지 무서워. 퇴근하고 들어갈 때 일부러 큰 소리내면서 들어가.'
항상 집에 계시던 아빠가 없어서, 혹시 외부인이 있을까봐 무서운 것일 수 있다. 엄마가 나이가 들면서 겁이 조금 많아진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아빠가 잠시 외출을 하셔서 집이 비어 있을 때에 빈 집이 무섭지 않았다.
지금은, 집에 외부인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캄캄해진 집은 무섭다.
전원주택에서 사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말하는 글들을 볼 때마다 '아닌데? 엄청 좋기만 한데?'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아빠 덕분이다.
마당에 평상을 펴 놓거나 의자를 두고 풍경을 바라보며 가족끼리 수다를 떨 수 있었던 것도, 마당에서 가끔씩 삼겹살도 구워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도, 항상 아빠가 마당을 정돈하고 필요한 여러 물건들을 챙겨서 가져다 놓고 마당으로 전기를 끌어와 불이 들어오도록 해 놓으셨기 때문이었다.
예쁜 강아지들과 함께 살면서 우리는 단 한 번도 개똥을 치워 본 적이 없다. 겨울에 한파가 닥쳐도 아빠가 미리 대비를 했고, 그럼에도 수도가 얼고 보일러가 고장나는 일이 있기도 했지만 아빠가 금방 고쳐 주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겨울. 그 집은 더 추워졌다. 수도가 얼고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 사람을 불러도 빠르게 해결되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우리는 캄캄하고 인적 드문 시골집이 무서워졌고, 그 해 겨울을 채 나지도 못하고 그 춥고 불편한 집을 벗어났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1년도 되지 않아, 우리는 아빠와 살던 집을 팔기로 했다. 아빠와의 추억이 가득했던 그 집과 넓었던 마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팔렸다. 새 땅 주인은 그곳을 우리와는 다른 용도로 쓰기로 했다. 우리의 추억이 가득 담긴 그 집은 전부 허물어졌다.
그 집에서 우리 다섯 명이 몸도 마음도 편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다 아빠 덕분이었다.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에도 물론 감사하게 생각했던 점이지만, 더이상 볼 수 없는 아빠를 떠올리며 더 감사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곤 한다.
감사하고, 사랑하고,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