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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일승 May 25. 2021

외국인 선수 이야기 1

프로농구를 얘기하자면 외국인 선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전력의 70% 이상은 그들의 능력치에서 나온다고 봐야 한다.

이번 시즌 우승한 인삼공사만 보더라도 NBA 출신의 셀린저라는 선수가 합류하면서 최강의 팀으로 탈 바꿈 하면서 플레이 오프서는 한 번도 패한 것이 없이 우승을 하였다.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득점과 제공권은 체격과 피지컬에서 우리 선수들이 상대가 되질 못한다. 외국인 선수가 안정되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표현처럼 국내 선수들의 기량도 안정되고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어쩌면 감독의 목숨은 이들 손에 달려 있고 감독의 능력 중 첫째는 외국인 선수 선발이라 안 할 수가 없다.  프로농구 15 시즌을 해봤지만 외국인 선수에 관한 에피소드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만큼 감독들의 애환이 달려 있다.



시작  


상무에서 코리아텐더로 옮기면서 단장에게 계약조건에 세 가지를 명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외국인 선수의 재계약이었다. 에릭 이버츠, 안드레 페리  이 둘은 검증된 선수들이었고 이 둘을 중심으로 시즌을 치르면 최소 플레이 오프 진출이 가능하다 싶었다.

그러면  나의 첫 프로 시즌은 연착륙에 성공 해 무난한 평가와 자신감을 갖게 하리라 예상했다.



    에릭 이버츠.. 득점력이 대단한 슈터였다


처음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는 트라이 아웃에 재계약이라 두 선수를 믿고 새로운 선수 자료는 쳐다보질 않았다.


당시 트라이 아웃은 시카고에서 했는데 끝내 이버츠는 나타나지 않았고 안드레 페리는 트레이드를 요구하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구단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줄 안 것이다. 마지막 날 재계약 선수들과 사인을 하기로 했지만 이버츠는 연락도 안되고 할 수 없이 아비 스토리란 선수를 지명하고 시카고에서 돌아왔다. 첫 시즌은 외국인 선수 때문에 숫한 고생을 하며 첫 시즌을 치렀다.


나는 시즌을 치르며 새삼 외국인 선수의 중요성을 깨닫고 2라운드부터  외국인 선수 선발을 공부 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한 시간씩 스태프들과 다음 시즌에 선발할 선수들을 인터넷으로 서치를 했다. 각자 담당하는 리그를 정하고 미국 대학 농구부터 선수들을 찾기 시작했다.


농구는 미국의 NBA를 제외하면 스페인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이스라엘 프랑스 러시아 등이 유럽에서 상위 레벨의 경기력을 가지고 리그를 운영하고 있었다.

외국인 선수들이라는 것이 곧 미국 선수들인데 대학부터 각 개인의 히스토리를 알고 있어야 하고 프로에서 어느 리그에서 어떤 스탯을 기록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또한 각 리그의 레벨이 특히 유럽은 어느 리그가 중요한 리그 인지도 잘 몰랐다.

시즌을 5개월을 치르고 우리는 부쩍 보는 눈이 향상됐다.

시즌을 마치자 마코치들과 미국으로 달려갔다. 지금의 NBA 하부리그인 G 리그, NCAA 파이널 포, 포츠머스 대회(PIT), 그리고 유럽으로 향했다. 나는 이때가 가장 공부를 많이 했고 외국인 선수 선발의 기본 개념을 익힌 시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67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PIT는 우리나라서는 처음으로 KTF팀이 갔다.

미국 대학 졸업 선수들 중 우수한 선수들을 초청해서 3일간 팀을 만들어 경기를 한다.  역사가 한 67년이 된 전통 있는 대회로 NBA지명이 확실시되는 선수들은 오지 않지만 한 장소서 이렇게 한꺼번에 이런 선수들은 보기란 쉽지가 않다. 때문에 전 세계각 리그 구단에서 스카우터들이 와서 선수들을 면밀히 관찰한다. 물론 NBA의 각 구단에서도 와서 선수들을 체크한다. 이렇게 선수들의 스카우트는 시작되고 이들이 각 리그에서 활약을 토대로 NBA, 유럽의 각 리그, 아시아리그까지 은퇴할 때까지는 스카우터 수첩에 이들의 기록이 관찰된다. 이곳은 대학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선수들이 에이전트와 계약을 할 수 있는 시점으로 많은 에이전트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치 취업시장 같은 느낌도 받는다.


나는 그곳에서 선수들의 경기력뿐만 아니라 각 리그 각 구단에서 온 코치나 스카우터 , 에이전트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이것은 나중에 나에게 엄청난 재산이었다.




              이런 식으로 각 팀의 로스터가 나온다.




    관중석의 사람들은 동네 사람 , 에이전트, 스카우터 등이다.


이곳을 오기 위해 도시 이름만 알고 무작정 비행기를 탔다. 국제업무를 하는 오경진도 강병수 코치도 모두가 이곳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포츠머스는 버지니아주의 아주 작은 도시였다. 군사요충지로 항구에는 항공모함과 잠수함들이 정박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암튼 비행기 안에는 농구 관계자들 같은 키가 큰 서양인들이 농구 파일 같은 것을 들고 있어 안심이 되었다.


공항에서 한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니 게임 장소 일정을 알려줘서 처음으로 pit에서 첫 동양인이 가게 된 것이다.  이는 KBL에 관심을 둔 미국 에이전트들이 한국에 선수를 보내고 싶은데 정보가 없어 찾던 중 우리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동양인은 처음 봤다고 한다.


 이제 나는 이런 커넥션을 바탕으로 전 세계 느리그 와도 소통이 되었고 선수들의 검증을 이메일로 크로스체크까지 하게 되었다. 한 예로 아주 뽑고 싶은 선수가 스페인에 있었는데 NBA 출신이라 궁금했다. 어린 나이에 유럽으로 거너 가고 첫 팀부터 시즌을 다 채우지 못한 게 거림 직했다.  그곳 리그의 어느 코치와 이메일을 주고받던 중 이 선수가 마리화나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았다.


자유계약


첫 시즌을 마치자 자유계약 제도로 바뀌면서 나는 선발에 하는데 자유로웠다. KTF는 구단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어 보고 싶은 선수들을 유럽에 가서 많이 봤다. 유럽은 보통 주말에 토 일 두경기만 하는데 평일은 구단 연습장을 찾아가 훈련을 지켜봤다. 이것은 요령이 좀 필요한데 보고 싶은 선수가 있는 구단에 팩스를 보내 한국의 신생팀인데 구단 시스템과 감독의 농구를 배우고 싶다면 대부분 허락을 해주었다. 구단 직원들 모두가 열정으로 가득 차 그런 일들은 열성적으로 해 주었다. 훈련을 보는 날은 해당 팀 감독이나 코치들과 저녁을 하면서 농구 얘기를 하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종이가 없으면 냅킨에 적으면서 자신의 작전을 설명하기도 하면서 언어가 정확히 전달 안돼도 농구는 같았다. 이러면서 나는 이론적으로도 기초가 없으면 이들과 대화가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게을리할 수가 없었다.


그중에 스페인에서 리키 루비오를 봤다. 감독은 곧 NBA지명이 확실시된다며 주니어팀에서 성인리그로 바로 올려서 다음 시즌에는 1부 리그에 데뷔시킬 거라고 한다. 그는 이미 유소년 청소년 대회에 나가서 NBA의 스카우터들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루비오는 이미 유소년 시절에 두각을 나타내 유럽의 NBA팀의 스카우터들이  구단에 강력하게 추천을 했다.


내 첫 자유계약 선수들은 게이브 미나케, 애런 맥기 두 선수다. 게이브 미나케는 미국의 큰 에이전트인 뉴욕 변호사 출신 깐깐한 유태인이었고 보다 큰 리그로 보내고 싶어 이 선수는 처음에 소개해주지 않았다. 난 푸에르토리코에서 뛰는 이 선수 모습에 흥미가 있었고 맨해튼의 그의 집에 까지 가서 공을 들여 계약을 성사시켰다.


24시간을 꼬박 새우며 협상을 조율할 때는 사무국장, 국제업무 직원 등이 번갈아가며 잠을 재우지 않고 이 에이전트를 다운시켜 결국 사인을 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이 친구와는 진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제이슨 윌리포드를 통해 주니어 버로란 선수를 소개받았다. 윌리포드는 프로 원년 외국인 MVP였다. 신뢰가 가는 선수였고 은퇴 후 대학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자신 있게 추천한다고 주니어 버로를 추천했다.



                       기본기가 탄탄한 주니어 버로



하지만 나는 그의 게임 테이프를 보고 실망을 했다. 한쪽 다리가 절면서 뛰는 모습이 아무래도 우리의 터프한 경기일정을 소화 못 할 것 같았다. 그는 솔직히 몇 년 전 무릎 수술을 했고 뛰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외국인 선수가 시즌 중 부상으로 교체되면 무조건 플옵을 나갈 수 없어 불안했다. 그러면서 대화를 오가는 중 먼저 계약한 게이브 미나케란 선수를 아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인가 주니어 버로는 바로 나는 그 선수와는 한 팀서 뛸 수 없다고 짐을 싸서 떠나버렸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이번 시즌 같은 팀서 뛰었는데 그렇게 이기적인 선수는 처음 봤단다. 난감했다.


    게이브 미나케 그는 KBL에서 수비하기 어려운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게이브를 지도했던 G리그의 코치에게 확인차 물었다.  게이브와 계약했는데 괜찮겠냐?

그의 대답은 이랬다. "너의 팀 선수들보다 상대팀 선수들이 더 싫어할 거다 그러면 된 거 아니냐....."



애런 맥기는 첫해 리바운드 왕을 했다. 3년의 계약기간 동안 매 시즌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마지막 해는 챔프전까지 갔었다. 승부근성이 아주 뛰어난 그는 훌륭한 선수였다.


맥기는 은퇴 후 댈라스에서 유소년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몇 년 전 김도수 코치와 그의 클럽을 방문했다.



주니어 버로와 계약이 틀어지던 차에 평소 관심이 많았지만 커넥션이 닿지 않았던 애런 맥기 측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즉시 시카고로 날아갔다.

그런데 미리 보낸 비디오테이프를 보려고 호텔 방에서 TV와 연결을 하려니 잭이 맞질 않았다. 나는 비디오를 미리 보고 낼 미팅 때 계약을 마무리하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비디오 테크를 미리 사서 들고 왔는데 보질 못하는 것이다. 국제업무인 오경진은 갖은 애를 써 보지만 해결이 되질 않았다. 나는 이 밤이 새기 전 그의 플레이를 봐야 했다.  그러던 중 조금 전 저녁을 먹은 한국식당서 준 라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엔 한국 택시를 하는 분 번화 번호가 적혀 있었다. 12시가 다된 이 시각 연락이 될 사람은 그분밖에 없었다. 바로 전화를 해 사정을 얘기하니 노래방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호텔로 오겠단다. 곧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카고 코리아 타운의 노래방에 갔다. 하지만 그곳의 모니터와도 비디오는  연결이 되질 않았다. 난감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기사님은 사정이 딱하게 느껴졌는지 자기 집으로 가잔다. 자기 집에 가면 비디오가 있어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새벽 한 시가 된 시각에 기사님 집에 갔다. 집이 좁아 거실에서 자는 애들을 깨워 안방으로 보내고 드디어 애런 맥기의 경기 영상을 풀 경기로 볼 수 있었다. 세 개의 테이프를 중간중간 보면서 우리는 그 집을 나왔다. 시간은 네시가 다 되었다.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과 조금의 사례비를 드리고 호텔로 향했다. 평화시장에서 가죽 옷을 도매로 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아 고향을 등지고 시신단다.

꼭 성공하세요.. 진한 동포애를 느끼고 우린 호텔로 향했다.

다음 날 드디어 애런 맥기를 만났다.  먼저 우리는 테스트부터 했다. 잠깐의 테스트가 기량을 볼 수는 없지만 태도와 열정 그리고 진지함을 보고 싶었다. 간단한 테스트를 했는데 몸도 안 풀렸는데 3P을 연속 12개를 넣었다. 피지컬도 좋고 몸싸움에 능한 줄 알았더니 3P도 좋았다.  그 자리서 바로 사인을 했다. 그는 에이전트와 통화를 하더니 사인을 해 너무 쉽게 두 번째 선수의 계약에 성공했다. 그런데 한국에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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