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선수들...
외국인 선수 이야기를 시작하니 과거 기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그중에서도 힘든 일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자유계약의 첫 선수들 미나케와 애런은 좋은 활약에 팀 성적은 좋았지만 매 경기가 살얼음판 같은 나날이었다.
두 선수는 대단한 자존심이 있어 서로가 팀의 에이스라 자부해서 절대 한 명 만 뛰는 쿼터에 자신들의 출전시간이 적으면 용납이 안됐다. 특히 미나케가 심했는데 애런이 먼저 뛰고 5분이 지나면 선수 교체를 위해 감독 자리 옆에 와 있었다. 교체를 위해 시위였다. 연습을 할 때도 간혹 일대일 드릴이 있으면 다칠까 봐 보기가 조마조마했다. 자기 앞에서 득점 용납이 안됐다. 애런은 파이널 포에서 자신이 맹활약해 오클라호마 대학 팀을 4강까지 올려놓은 전국구 스타였고 미나케 역시 명문 텍사스대의 에이스로 NBA 하부리그 D리그서 꿈을 키우다 유럽의 최고 리그인 스페인 세리아 A 출신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미나케는 코트에서는 난폭자였다. 너무 자주 테크니컬 파울을 많이 해서 퇴장당할까 봐 내가 강하게 항의를 먼저 해 위기를 모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 테크니컬 파울을 받으면 주의를 해야 하는데.. 흥분의 절제가 어려운 선수였다.
그런 미나케는 코트만 벗어나면 성인군자요, 스마트한 청년이 되었다. 아 야누스인가..
그는 항상 이동시 버스서 성경을 읽는다. 한국을 떠날 때까지 그런 모습으로 일관되게 생활했다. 그는 또 아주 머리가 비상했다. 한국에 오기 전 한글 배우는 책을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주었더니 한국 온 지 한 달쯤 거리 간판을 조금씩 읽어 간다.... 와!
미나케는 나이지리아 국적이다. 아버지가 미시간대에서 교수를 할 정도로 인텔리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자신을 엄청 강하게 키웠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검소했다. 팀에서 있을 때 사복은 운동복 한 가지만 입고 다녔다. 다른 운동복도 아끼느라 입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서 만나 결혼한 그의 아내는 가봉의 왕족 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외교관으로 미국으로 왔다고 한다. 그래서 씀씀이가 매우 컸다. 한 번은 미나케가 구단 직원들에게 부탁을 했다. 혹시 아내가 쇼핑할 곳을 물어보면 평화시장 같은 곳을 알려 달라고 한다. 이미 그는 한국을 다 파악하고 온 것이다.
그 가족은 원정을 갈 때 같이 동행을 했는데 미나케는 남편이 아니라 거의 하인 수준이었다. 아이의 유모차 젖병부터 본인 운동복까지 챙기는 것이 일이었다. 아내는 핸드백만 들면 되었다.
미나케는 패턴을 하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정말 비상하다. 특히 언어능력이 뛰어나 불어 중국어 스페인어도 조금씩 한다. 미나케는 지금 미국의 IT회사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반대로 패턴을 젤 못 외우는 선수가 있었다. 그래서 볼이 그에게 가면 피니쉬였다. 더 이상 볼이 돌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면 찬스가 났었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 후 그는 NBA에 갔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NBA 스카우터들의 선수 보는 눈이 탐탁지 않음을 느꼈다. 그는 워싱턴 위저드 선수가 되었다.
아비 스토리였다. 그 당시 구단주는 마이클 조던이었던 거 같다. 성적이 안나는 이유가 있었다. 그 후로 나는 해외토픽에서 아비 스토리의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기마경찰의 말을 술 먹고 때려 입건이 되고 팀에서 더 이상 선수 생활을 못하게 되었다. 취해서 말이 상대 선수로 보였나?
몇 년 전 포츠머스 캠프서 아비 스토리를 만났다. 당시 wnba의 코치로 있었는데 에이전트를 하고 싶어 선수를 보러 왔다고 한다.
그런 아비도 트레이드가 되던 날 여자 친구와 둘이서 통곡을 하며 우는 모습이 있었다. 정이 들었나 보다
아무튼 나는 미나케를 플레이 오프를 앞두고 불안해서 교체를 결심했다. 그의 돌발 행동이 시즌을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원주 TG경기서 자밀 와킨스와 코트 내에서 다툼으로 서로가 퇴장을 당했다. 그렇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라커룸에서 그는 동부 라커룸으로 가서 자밀을 죽인다고 쫓아갔다. 사건이 커졌다. 출전 정지, 벌금 등등이 앞으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한 번은 올스타 브레이크에 중국에 꼭 다녀와야 하는 개인적인 일이 있어 올스타에 안 뽑게 해달라고 한다. kbl에 사정을 얘기하고 중국으로 보내주었다. 귀국하면서 기어이 사고를 치며 구단을 긴장시켰다. 아마 약식 기소를 당해 벌금까지 낸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외국인 선수들을 능숙하게 대하는 요령도 없는 초보 감독이었다. 플레이 오프를 실패하고 그래도 미나케가 있었다면 하는 후회도 남는 시즌이었다.
귀화선수들
외국인 선수들 얘기를 하자니 귀화 선수들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어쩌면 그들도 외국인 선수나 다름이 없었다. 문화 언어가 완전히 다른 선수들이었다.
2004년 인 것 같다. 샌 안토니오 파이널 포 기간 중 결승전 전날 대학 올스타와 할렘글로브팀과 경기가 있어 보러 갔는데 할램팀에 동양인인데 엄청난 점프력과 운동능력을 가진 선수가 있어 눈을 의심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보니 한국계였다. 마침 인연이 이상하게 그곳서 만난 에이전트가 "자신 동네 사는 한국계 선수가 있는데 한국서 뛰고 싶다고 알아봐 달라고 했단다". 이승준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법무부에 알아보니 귀화는 현실적으로 젤 빠른 게 5년이 필요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동생 이동준이 연세대학교에 들어왔다. 슬슬 하프코리언들에 관심을 갖고 국내로 귀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문태종
제로드 스티븐슨 (문태종)은 앞서 언급한 이스라엘 리그에서 탑 레벨 선수였다. 당시에 하프 밀리언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도 탑 레벨 선수였다. 나는 귀화선수 중 가장 최고의 선수로 문태종을 꼽고 싶다. 그는 실력뿐 아니라 자기 관리 훈련자세 등 우리 선수들에 좋은 영향을 미친 훌륭한 선수였다, 그가 가진 간결하고 깔끔한 슈팅은 일품이었고 그 영향을 가장 잘 받아들인 선수는 김동욱이라고 단언한다. 둘은 슈팅 드릴을 같이 했는데 김동욱의 기량은 검증된 선수지만 문태종의 빠르고 간결한 슈팅 폼을 보고 동욱이 역시 더 다듬어진 것 같다.
문태종의 기량 중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게 있는데 바로 포스트 볼 투입하는 패스다. 아무리 좋은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더라도 트랩을 피하고 수비를 공략하기에는 하이 로우 패스를 이용한 골 밑 공략이 가장 효과적인데 이 패스가 말이 쉽지 적당한 타이밍에 높이를 감안해서 패스를 하기란 여간 어렵다. 지도자 입장에서도 이 패스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난감하다. 이것을 훌륭하게 해내는 선수가 바로 문태종이다. 그래서 외국인 선수가 덩달아 살아난다.
나는 문태종과 사적인 얘기를 하면 통하는 게 하나 있다. 바이크다. 난 버킷 리스트 중 하나 가 할리를 몰고 전국을 일주하는 꿈이 있다. 할리의 배기음에 몸을 싣고 심장의 요동을 치는 중저음을 느끼고 싶다. 헬멧, 재킷, 장갑, 부츠 등 많은 준비를 했다. 다만 면허증과 바이크가 없다. 온 가족이 반대란다.
이런 할리만 보면 꼭 사진으로 남겨 나를 위로한다
문태종은 좀 다른 바이크를 선호한다. 그는 스피드 광이다. 그래서 가와사키 듀카티 이런 걸 미국에서 탔다고 한다. 하지만 엄한 그의 아내 니콜 눈치를 봐야 한다. 고양서 훈련을 마치면 그는 쉘비인가 하는 차를 몰고 제2자유로를 빠져나간다. 어떤 차도 문태종 차를 추월하는 것을 못 봤다. 코트에서도 그렇게 뛰면 한 10년은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가족이다. 항상 세 자녀와 아내를 배려한 생활을 한다 전지훈련을 가더라도 가족을 대동했다. 특히 둘째 아들은 농구 선수가 꿈인데 최근 영상을 보니 신장도 엄청 컸고 기량도 많이 좋아졌다.
아빠로서 문태종은 간혹 큰아들의 학교 적응 문제에 고민하기도 하는 아빠이기도 했다.
이 사진이 아마 문태종과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 같다
아내 니콜은 미국 농구 명문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농구를 했다. 어쩌다 쉬는 날 아들 운동시키러 체육관에 같이 나와 일대일을 하면 봐주는 게 없이 살벌한 게임을 한다. 니콜의 슛을 문태종은 블록을 하려고 맹렬히 따라간다.
문태종은 시즌엔 술 담배 커피 등을 일절 안 한다. 심지어 탄산음료 마저도, 그런 몸 관리가 오랜 시간 선수 생활을 하게 만든 것 같다. 그의 모범적인 태도는 우리 선수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들도 좋은 영향을 받는다. 그는 누굴 강요하거나 리드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묵묵히 하면서 따라오게 한다. 힘든 훈련이나 드릴은 베테랑 외국인 선수들은 빠지려고 요령을 피우지만 자신보다 어린 코치 지시에도 군말 없이 따르는 그의 모습은 배울 점이 많은 선수다. 진정 프로선수다.
조 잭슨과 문태종 아마 크리스마스 이벤트 촬영 같다. 아무리 무리한 콘셉트의 홍보물도 그는 불평 없이 임하는 프로다운 마인드를 가졌다.
이현중이 미국서 문태종의 지도를 받았으면 한다. 태종이를 롤 모델로 삼고 그의 플레이를 배웠으면 좋겠다. 포지션이며 슛터로서 배울 점이 너무 많은 선수다. 아마 학교도 문태종의 집과 멀지 않은 것 같다.
일정 수준에 올라온 선수들은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 정체나 발전이냐 분명 표시가 난다. 자신과 잘 맞는 코치가 있다.
문태종의 둘째는 키가 죽순처럼 자란다. 최근의 모습을 보고 신장도 기량도 일취월장해서 놀랬다. 하치무라가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다.
문태종이 그런 아빠가 되어 다시 한국을 찾는 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