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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일승 Jun 22. 2021

설악산엔 귀신이 있을까?

지난 일요일에는 한기범 희망재단의 행사에 갔었다. 전에는 기범이가 행사가 있다고 선수들 협조를 요청하면 선수들이 가곤 했는데 쉬는 내게 요청이 들어와 의정부체육관에 갔었다. 연예인들도 보고 윤호영을 비롯 몇몇 선수들이 와서 좋은 일에 동참하고 있었다.




한기범을 보면 나는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그중 하나가 약 3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2021 한기범 희망나눔행사




그 해 여름도 더웠다. 그리고 비가 많았고 태풍도 몇 차례 왔었다. 우리 팀은 한 여름의 지루함을 덜어 내기 위해 지방 전지훈련 겸 산악 훈련을 계획했다.  이번엔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해서 설악산 종주를 하자고 했다.


대표팀 선수들은 소집이 되어 박인규 코치님이 팀을 이끌고 있었다.


계획은 이랬다.  백담사에서 출발  중청봉서 하루를 일박하고 소공원 쪽으로 하산하는 일정이었다. 우선 설악산 인근 콘도에서 일박을 하고 새벽에 버스로 백담사에 내려주면 담날 버스가 소공원 쪽에서 선수들을 태워 다시 콘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생각나는 선수들이 한기범 이훈재 심상문 허기영 조현일 권종오 등이 생각난다


하지만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비가 계속 그치질 않고 태풍경보가 발령됐다 우리는 콘도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고스톱도 치고 카드놀이도 하며 시간을 보내며 날씨가 풀리길 기다렸다. 이틀이 지나고 아침을 먹는데 한기범이 밤새 한숨도 못 자고 공포에 떨어다며 얘기를 한다.


   1993년인가 그 시절 기아농구단 모습인 거 같다.



모두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무슨 귀신은요.. ㅎㅎ  이러는데 기범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어젯밤 애들하고 카드 치다 졸려서 먼저 자기 방으로 나와서 자는데 누가 꼭 자기를 쳐다보는 곳 같아 눈을 떠 보니 어떤 하얀 소복을 입은 아줌마가 애기를 안고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더란다. 너무 무서워 이불을 얼굴을 덮고 밤새 공포에 떨다 왔다고...


선수들의 야유가 시작됐다. "형 꿈에서 본 거 아니에요?" " 태몽 아니에요?" 기범의 공포는 개그가 돼버렸다.


기범의 공포스러운 귀신얘기는 그날 오후 드디어 낼은 날이 맑을 거라는 기상 예보를 접하고 낼 새벽 등정을 위한 간단한 산행 준비를 했다. 오이도 좀 사고 간식거리도 사고 혹시 몰라 비옷도 샀는데 선수들이 맞을지.. 그런데 본사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내일 진급시험이 있으니 시험 보러 올라 오란다. 그 당시는 실업 팀 시절이니 일반 직원들과 같은 인사 절차를 따랐다. 대충 봐줄 줄 알았는데 인사부와 협조가  잘 안됐나 보다 생각하고 내일 대리 시험을 봐야 했다. 매니저 일을 했기 때문에 대충 일을 버스 기사님에게 인계하고 밤에 서울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침 기사님과 선수들이 무사히 백담사로 이동 산행을 시작했다는 통화를 했다. 당시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시험을 마치고 담날 설악산을 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어차피 가봤자 선수들은 중청봉 대피소서 자고 다음날 하산하기 때문에 여유롭게 하루를 서울서 보낸 뒤 내려갈 심산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중청봉 대피소에 전화를 했다. 선수들의 힘든 산행을 약 도 좀 올려주고 이상이 없는지 전화를 한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 힘든 산행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선수들을 따라 가면 너무 빨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미 그때 난 은퇴를 한지가 3년이 넘었다. 지난번 유명산 이나 덕유산 산행에 낙오를 해서 망신을 당했다.


선수들과 산행을 하면 조별 개인별 시상을 해서 상품을 걸고 체력적 훈련을 유도했다. 선수들보다 30분 이상 먼저 출발해도 그랬다.



그런데 중청봉 대피소에 선수들이 없단다.  헉!

그곳 담당자는 선수들이 잠깐 머물다 바로 갔단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해서 콘도 있는 버스 기사님에게 전화를 했다.

"엉  애들이 바로 내려온다고 새벽 두시까지 소공원에 버스를 대라고 연락이 왔어"

아 그래요.  저두 그럼 아침에 바로 내려 갈게요 그럼 애들 다 내려오면 이상 없는지 전화 좀 주세요


새벽 두 시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두시가 돼도 전화가 없다가 세시쯤 전화가 왔다.

"아니 애들 몇 명이 아직 안 왔어 그래서 박 코치님하고 훈재가 다시 올라갔어"

아니 이게 어찌 된 건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또 전화벨이 울렸다. 추 선생 이거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아 먼저 내려온 애들이 앞이 안 보여 위험하게 내려왔대.. 산악구조대 이런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와 진짜 미치겠네  현장이라도 있었으면 덜 답답할 텐데 사고라도 나면 큰 일이었다. 바로 출발하고 싶었지만 전화가 올 거 같아 그러지도 못했다. 설악산인가 속초인가 무슨 구조대가 있어 전화를 했더니 날 밝으면 하라고 짜증을 낸다. 구조는 낮에만 하나... 속으로 화가 나면서도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 무슨 일이 라도 나면 큰 일인데..


박 코치님이야 부임하신 지 얼마 안 되고 최고참이자 매니저인 내가 팀을 잘 관리해야 했는데..


다섯 시가 돼서야 선수들이 다 하산했다고 전화가 왔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그런데 선수들이 깨지고 찢어지고 이만저만 다친 게 아니란다. 특히 기범이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뻔하고 머리가 찢어지고.. 알았고 일단 숙소 가서 수면을 취하라고 하고 차를 몰고 설악동의 콘도로 향했다.

오니까

점심시간에야 선수들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무슨 참전용사 수준의 무용담을 얘기하는데 귀신이 또 등장한다.

전말은 이랬다. 중청봉 대피소서 자야 하는데 좁고 그러니 하산하는데 얼마 안 걸리니 그냥 가자고 박 코치님에게 건의를 했단다. 그리고 하루를 속초 해수욕장에서 보내자고 해서 바로 하산을 했단다.


그런데 전등도 부족하고 슬슬 선수들이 흩어져 내려오다. 몇몇 선수들이 뒤로 쳐진 모양이었다. 어둡고 손으로 더듬다시피 하산을 하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는 야간산행을 하던 앞서가던 아가씨 둘이 젊은 남자들이 무서워 바위 뒤에 숨어서 먼저 보내고 뒤따라가려고 했었는데 마침 누군가 거기서 소변을 보려다 두 여성들이 바위 뒤에서 소리치고 나와 기절할 뻔했다나..ㅋㅋ 하필 숨어있는 곳에서 ㅎ ㅎ


두 번째는 설악산을 많이 가본분들은 아실 거다 양폭산장 쪽에 하산을 하다 보면 위로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데 올라가야 소공원 쪽으로 바른길이 나온다 한다. 하지만 무심코 초행길에 내려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지 계속 내려갔단다. 뒤에 처진 허기영과 권종오 둘 얘기다.


그런데  앞선 일행들의 모습도 소리도 안 들려 불안해서 서로가 이 길이 맞는지 얘기를 하던 중 권종오가 다시 앞을 본 순간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서 있더라는 것이다.  그 길로 권종오는 왔던 길로 전속력으로 달아났고 허기영은 영문도 모른 체 더 겁이나 따라갔다고 한다. 허기영의 말에 따르면 갈 때 아름드리나무가 쓰러져 있어 겨우 넘어갔는데 종오가 도망갈 때는 허들 선수처럼 한 방에 넘어갔다고..


한 참을 달린 이들은 낙오한 둘을 찾기 위해 다시 산에 오른 박 코치님과  이훈재를 만나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한다.


모두가 권종오에게 물었다.

"그냥 달 빛에 뭐 하얀 게 펄럭인 거 본거지?"

"형 진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정말 이 만큼 가까이 있었다니까요.."


기범이는 한 참 탈모가 되어있는 머리가 나뭇가지에 긁혀 상처가 났었고 어느 선수는 귀가 좀 찢어진 모습도 있었다.

"야 진짜 귀신이 둘 살렸네 안 그랬으면 계속 산속으로 가서 조난당해서.."


우리들은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귀신의 존재를 감사하게 생각했다. 콘도 식당에서 이렇게 무용담을 얘기하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서빙하던 종업원이 이 말을 들었나 보다.


"해마다 저기 양폭산장에서 두 세명이 꼭 목숨을 잃어요"


우리들은 창 너머 보이는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가슴을 쓰려 내렸다. 한동안 귀신 얘기는 풍덕천 기아 숙소에서 떠나질 않았다.


기범아  머리 많이 났네?


엉 심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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