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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일승 Jul 05. 2021

1999(1)

그 해 여름도 더웠다. 특히 체육관은 낮에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당시 성남 창곡동 체육부대에는 세계군인 체육대회를 대비해서 특별한 훈련이 도입되었다. 거기다 내무반은 보일러 교체공사로 농구장에서 단체로 취침을 했다.

이게 과학적이라고 보고가 되어 유럽의 시간에 맞춰 10시간의 시차를 극복한다고 일과를 그 시간에 맞춰 생활이 시작되었다.

훈련이 저녁 8시와 새벽 3시에 진행되었다. 참 미칠 노릇이었다.

선수들은 운동하고 자면 되지만 지도자들은  퇴근 업무 가정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한 시간도 잘 수가 없었다. 가기도 전에 쓰러질 노릇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절대 북한에 지면 안됩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위상을 보여줘야 합니다."

군 간부들은 이렇게 강조를 하면서 선수단을 독려했다.

상무 즉 국군체육부대의 몇몇 종목은 곧 있을 세계군인 체육대회에 출전한다.  상무에 있는 전 종목이 아닌 전략종목만 출전한다. 아마 예산 문제 였으리라.

군인 체육대회는 유서 깊은 대회다. 처음 세계 1차 대전시 잠깐 휴전을 하면서 참전국끼리 체육교류를 한 게 계기가 되어 각 종목마다 하다 1995년부터 전 종목이 올림픽처럼 4년주기로 한다. 그런데 4년 전 첫 대회서 우리는 종합순위에서 북한한테 졌다고 국방부가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몇 달 전 출전 종목을 선정할 때부터 부담이 컸다. 당연히 성적이 날 만한 종목이 우선이었다.

농구는...?

농구는 군인 체육대회 단일 종목 대회를 할 때부터 원년 멤버로 세계군인 체육대회 조직위에 영향력을 가진 나라였다. 전임 김홍배 감독님이 잘해 놓으셔서 그런지 조직위서 농구 참가를 독려 국방부는 참가종목에 넣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해 봄 김홍배 감독께서 정년퇴임을 하셨지만 조직위는 초청을 해주었다.

정식 감독을 발령받지 못한 나는 부담이 더했다. 일단 이 대회는 감독 대행이 되었다.

우리 체육부대 12개 종목과 군인 종목의 선수들은 정신교육 특별 체력훈련 거기다 시차 적응 훈련까지 아주 빡 세게 일과를 수행해 나갔다. 나는 선수 시절엔 서울 올림픽 한다고 이미 농구는 대표 선발이 끝났는데도 전 부대원이 많은 수가 대표팀에 뽑혀야 한다고 갖가지 훈련을 다 받았다. 체육부대 옆에 있던 특전사에 가서 유격훈련만 3번 정도 받았다.

막타오 헬기레펠 건물 레펠 등 나는 레벨에 명수가 돼있었다.  나는 억울했다. 왜?

나는 해군이었다.

그 당시가 떠올랐다.

군대는 역시 줄이다.

3주마다 국방부 회의실에선 참가하는 종목의 감독들과 체육부대간부 국방부 관계자들이 대책 회의를 하였다.

각  종목의 훈련 상황이나 전력의 보탬이 될 만한 선수들을 입대시켜 대회를 마치고 훈련소를 보내는 협조 등을 해주었다.


이 날은 차관보인가가 참석 각 종목의 목표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농구"

구기종목서 세 종목이 나가는데 배구 핸드볼 모두 금 아니면 은을 목표로 한단다.

"저희 농구는 페어플레이상을 목표로..."

"아니 그런 목표도 있어요?"

참석자 모두가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나는  사실 목표를 세울 수 없었다. 메달에 들지 못하는 8강이니 16강이니 하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서 하는 대회라 가까운 유럽농구 강호들이 많이 참가했다.

복도 지질히 도 없었다.

목표미달을 하면 귀국후 부대서 군기교육을 들어갈거고.  그렇다고 목표가 없다고 할 수도 없고..

미국이나 남미 같은 데서 하면 멀어서 안 올  유럽 나라가 많을 테니..

일단 개최국 크로아티아, 미국 그리고 라트비아 이태리. 등등 강호들이 많이 참가했다. 이들은 의무 복무가 많아 6개월 정도라 이런 대회가 열리면 거기에 맞춰 군 복무를 대신했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우린 답이 없었다.

배구나 핸드볼 감독님들은 은근히 나를 겁을 주었다. 하긴 준대표팀 전력들을 보유한 배구나 핸드볼은 국제무대서 통하니 성적에 부담이 전혀 없는것 같았다.

우리 팀 최장신은 오리온에서 입대한 박재일이었다.

김병철 김희선 김태진 신석 지형근 정재훈 김광원 김정인 이상영 안종호 윤재한 한 명이 기억이 가물가물..

키가 워낙 작아 국방부에 추가 입대를 신청 대학생이던 안종호와 윤재한이 왔지만 별로 도움이 되질 못했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제법 재간들은 가지고 있었다.  



                     윤재한 김태진 김광원 김희선 김정인 박재일 정재훈 (왼쪽부터)  



나는 국제경기 경험이 많은 원로 선생님들을 찾아 다니며 이들과 경기하는 요령과 방법을 배우면서  선수들에게도 경기요령을 지도하는데 더 집중했다. 신장이 크고 체격이 좋은 강팀들과 경기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들과 경기는 맞붙을 때는 백전백패다. 다만 심리적인 면과 경기 흐름을 조절해 페이스를 무너트리는 요령이 있어야 한다.



저희 어해요?...



이제 출발의 시간이 다가왔다. 군인답게 부대장에 출전 신고를 하고 우리는 버스에 탑승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의 국군체육부대 선수단은 전세기로 프랑크푸르트로 그리고 비행기를 갈아타고 크로아티아 자그래브로 갈 여정이었다.

각자 출국날 아침 여권을 받아 개인소지를 하고 출국장에 한 명씩 통과하는 순간 누군가 다급히 나를 찾는다

감독님! 감독님!

왜?

큰 일 났습니다.

왜?

"김광과 정재훈이 출국이 안된다고 합니다"

뭐?


2편에서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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