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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일승 Jul 12. 2021

1999(2)

소란스러운 입국심사대에는 여러 명이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글쎄 안된다니까요!"

"아니 나라 위해 나가는 군인들 한 번 봐줍시다"

자세히 듣고 보니 정재훈 김광의 두 여권이 문제인 것 같았다.

서로 사진을 바꿔 붙였다.

이것은 순전히 여권대행을 하는 여행사 잘못 이었다.  하지만 분실을 우려해 출발일에 나눠주고

이것을 나눠줄 때 얼굴 사진만 보고 이름을 불러줘서 정재훈이 김광원 사진을 달고 나간 것이다.

한마디로 가짜 여권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니 김광원이 출국심사대 앞에 정재훈 씨! 아니 저 아닌데요..

이렇게 가짜 여권 사건이 시작되었다.

여권은 전적으로 외교부가 만들고 출국심사는 법무부가 책임진다.

심사대 담당자는 내가 출국시켜주면 현지 입국 심사할 때 대한민국 정부가 가짜 여권을 보증 선 게 되어 절대 안 된단다.

국방부 임원들이 보증을 선다느니.. 공항에 파견된 국방부 요원들도 사정을 해 보지만 요지부동이다.

그럼 차선책은  다시 여권을 급행으로 만들어 둘만 따로 오는 것이다.  이런.. 갈아타야 되는데 이 둘이 과연 그 복잡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배웅을 나온 부대 관계자는 여권은 하루면 만들 수 있다 한다


그런데.. 간부들이 슬슬 출국장에서 duty free지역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 두 선수를 데리고 제가 가겠습니다 하는 간부가 아무도 없다. 이거 참 웃긴다. 할 수 없이 내가 둘 데리고 가겠다 나오려 하자 그건 절대 안 된단다

하긴 낼 팀들 미팅이 있어 조추첨과  룰 미팅을 해야 한다. 거기다 부대장한테는 비밀로 보고를 안 했단다.

"재훈아 광아 둘이 잘 갈아타고 올 수 있겠냐?"

" 감독님 정말  자신 없습니다"  "니들 안 오면 국제미아에 탈영이 되나? 분실이 되나?" ㅎㅎ

부대 관계자 중 모 사무관이 "추 감독 여행사 하고 프랑크푸르트 공항 약도를 그려 틀림없이 갈 수 있도록 할 테니 걱정하지 말란다".

두 선수의 불쌍한 두 눈을 보며 우리는 탑승을 하기 시작했다

대회 성적을 걱정할 틈도 없이 이 두 선수가 더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것보다 이 선수들을  데리고 가겠다 나서는 부대 간부가 없어 더 얄미웠다.

긴 비행을 하며 우리는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래브의 한  대학 기숙사에 선수촌이 있어 짐들을 풀기 시작했다.


미리 선수촌에 입촌한 서양 여자선수들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키들은 얼마나 큰지..

특히 동유럽 국가들 선수들은 눈이 부셨다.

어차피 성적도 기대 안 하는데

"야 같이 서봐" 미녀군단들만 만나면 사진을 엄청 찍어 줬다

같은 구기종목 배구 핸드볼은 이미 굳은 얼굴로 성적의 압박감이 눈에 보였지만 나는 선수들에

일체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무거운 짐을 4층까지 들고 와서  푸는 순간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4층 복도에는 캐나다 벨기에 선수들이 나와 온갖 인상을 쓰고 소리를 질러 댔다

김치가... 김치가..

익어 터져 국물이 흐르고 냄새가 복도를 진동했다.

코가 개코인지 복도 맨 끝에 있던 서양 놈들도 나와서 뭐라 한다.

하긴 내가 맡아도 좀 그랬다

누가 싸온 김치는 젓갈을 아주 흠뻑 넣는지.. 한국에서도 맡기 힘든 냄새였다.

우리는 애국자들이라 식단도 전기밥솥에 쌀까지 특단의 준비를 해왔다.

아  김치 이거를 버릴 때도 없는 거 같다.

나는 할 수 없이 "김치  다 걷어"

이렇게 내 방에서 배가 이 만큼 부풀어 오른 김치 비닐을 터트리고 국물을 하수구에 다 버리고 배추만 다시

반창고로 꽁꽁 묶어 욕조에 물을 채우고 물속에 잠수를 시켰다. 요로면 냄새는 이제 안 나겠지.. 나는 잔머리를 쓴다고 했지만 밖에서 오다 우리가 쓰는 건물에 가까우면 우선 김치 냄새가 풍겼다.

정말 창피했다.

 특히 미개인처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더 그랬다


선수단 식당은 역시 다양한 식단이 있었지만 2% 부족했다.

느끼함 다시 방에 와서 컵라면으로 입가심을 해야 깔끔했다

북한 선수들도 피는 못 속인다고 고려 고추장이라는 통조림을 들고 다니며 느끼함을 달랬다

우리는 하루 한 끼는 전기밥솥에 밥을 하고 김치를 자르고 참치에 고추장을 넣고 참기름에 비벼 냄새가 날까 봐 한 참 떨어진 캠퍼스 외딴곳에서 식사를 했다.  

ㅎㅎ 완전 거지 부대였지만 맛은 어디 비할바가 못 댔다

사실 다른 종목 선수들도 김치를 싸왔지만 우리 김치 냄새 소동이 너무 커서 용기 내서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핸드볼 코치가 형! 나도 밥 먹을 때 끼워 줘! 이렇단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

이 둘이 드디어 무사히 도착을 했다. 둘의 표정이 거의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안심이 됐다.

불경스러운 생각을 몇 번이고 했지만...

장하다  재훈아 광원아!

보통 오전 한 시간씩 훈련 시간을 줬다. 우리는 그 시간이 끝나면 선수들을 데리고 시내 관광을 다녔다.

어느 종목도 관광은 꿈도 못 꾼 분위기였지만 우린 그냥 자그래브를 탐닉했다

그때만 해도 한 시간 두 시간 후 사진을 인화해주는 현상소가 유행이라 바로 사진을 나눠주고 다른 종목 선수들의 염장을 지르기 시작했다.

부러움 반.. 나중 보자  복수심 반으로 농구부를 보는 시각이 느껴졌다.

배구 핸드볼 감독님들이

"추 감독 너무 풀어주는 거 아냐?"

네, 부대 사기는 감독님들이 올려주세요..  

좌로부터 김병철 김광원 이상영 신석 지형근 정재훈 김희선 아래줄 김태진 김정인 자 그래브의 중앙역 앞에서 한 컷  



우리는  해외 나와서도 식당 가는데 줄 맞추고 걸어가고 이런 모습이 정말 창피했다. 오직 북한과 우리만이 오와 열을 맞춰 식당으로 향했다.

그래서 부대장에 건의해서 자연스럽게 걷자고 했다. 북한 선수단은 발을 기가 막히게 맞춰 걸었다.

이제 시간은 개막식이 열렸고 경기가 시작된다.


입장식




당시 사라란치 IOC 위원장도 오고 제법 행사의 규모가 있었다.  입장식 등 이런 행사 때문에 선수들이 제복을 가져왔다.

하지만 내 눈엔 그 늘씬한 제복을 입은 여자 선수들이 색다르게 보였다

2미터 가까운 여자배구팀 러시아 벨라루스 라트비아 이태리 크로아티아 이런 나라 선수들 앞에서 김태진(172 현 명지대 감독)은 농구 선수라고 말을 못 했다.

우리와 함께 간 특전사 여군 중 천 번 이상 낙하를 한 골드윙 마크단 대원도 있었다. 각 군들 제복들이 눈이 부셨다.

맨 오른쪽은 얼마잔 타계한 마라톤 오창석 감독이다.



개막식에 그들이 스타디움에 낙하를 했다. 각국이 함께한 낙하였다.

그리고 조추첨..  우리는 북한과 다른 조가 되었다.

미국 캐나다 벨기에 라트비아 등과 한조가 되었다.

한 게임이라도 이겨야 되는데...


박재일 김병철 이상영 김광 김희선 김태진 안종호 지형근 신석 윤제한 정재훈 박재일 김정인(왼쪽부터)

개막식 입장 전에 각국 선수단과



무엇보다 북한보다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그리고 그다음이 성적이었다.

과연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경직되지 않고 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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