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 셋 - 000을 좋아하시나요?

삶에서 좋아하는 것을 만났을 때

by 김 고운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받아보신 적 있으실 테지요.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기억 속 위와 같은 질문을 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키도 마음도 커가는 중이었던 저의 어린 친구들이었습니다. 스티커 두장을 두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걸 쉽사리 고르지 못해 갈팡질팡하며 문구점 앞을 서상이던 그때의 그 아이들 말입니다. 그들의 질문 속 주어는 사람이 될 때도 있고, 사물이 될 때도 있고 어쩔 때는 무형의 무언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동그란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주어가 무엇이든 성실히 대답해 주려 부던히 애를 썼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겠죠.

"너는 과일 중에 뭐가 제일 좋아?", " 음, 나는 사과가 제일 좋아!"



참 신기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 많은 것 들 중에 딱 하나를 골라서 말해줄 수 있었을까요. 상큼 달달한 맛이 나는 사과는 다양한 재료로 쓰일 수 있어서 좋고, 여름의 수박은 그 자체로 너무 달콤해서 혼자 앉은자리에서 반통을 다 먹을 수도 있습니다. 딱딱한 단감은 싫지만 단감이 익으면 연시, 그 감을 말리면 곶감이 됩니다. 달콤한 연시와 곶감은 가을을 기다리게 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노랗다 못해 갈색 반점이 올라오는 바나나를 우유랑 먹으면 또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무슨 과일을 제일 좋아한다고 대답해야 했을까요.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떻게 말해 주저야 할까 고민만 하다가 차례를 놓쳐 말도 못 꺼낸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질문 하나만 받아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탓에 단 한 번도 '가장'이라는 단어를 붙여 자신 있게 말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없다고 말하기는 너무 섭섭하니 친구를 옆에 세워놓고 말해달라 한 적도 없는 '좋아함' 목록을 손가락 하나하나 꼽아가며 나열해 보곤 했습니다.


"나도 사과 좋아해! 그리고 노란색에 갈색 섞인 바나나도 좋아. 너는 연시 좋아해? 나는 연시 진짜 좋아해서 아빠가 가을만 되면 과일가게에서 연시 한 상자씩 사준다! 나는 그거 다 먹을 수 있는데 엄마가 감 한 번에 많이 먹으면 배 아프다고 그래서 조금밖에 못 먹어."


열심히 나만의 좋아함 리스트를 말해주고 있노라면 흥미롭게 들어주던 친구들이 "어? 나도 그런데?"라고 맞장구 쳐줄 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몰랐던 내면의 좋아함을 대신 발견해 준 것 같아 어깨가 으쓱거렸더랬죠.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꿈보다는 현실에 타협해서 살아가는 이름만 어른인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일까요. 이제는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압니다. 그들의 질문이 상대방을 향한 향한 배려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요. 의중을 물어보는 일은 배려와 관심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 대답해 주며 상대방이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물어보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도 좋겠지요.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길고 장황한 설명보다는 보다 명확하고 간단한 답이 좋은 사회관계의 지름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손가락 하나하나 꼽아가며 좋아하는 것들을 소개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건 꽤나 씁쓸합니다.



얼마 전에도 일상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만났습니다. 이맘때쯤에만 만날 수 있는 것들도 있어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것들을 만났는지 말할 기회가 없어 속상해하던 찰나에 이곳이 생각났습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마음을 공유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 여러분께 제가 만난 좋아함 목록을 소개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좋아하는 냄새가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마음 가는 냄새는 많습니다. 아카시아 꽃 향기도 좋아하고 갓 지은 밥 냄새도 좋아합니다. 특정 향수만을 뿌리는 친구가 있었는데 길을 가다가 비슷한 향을 맡으면 그 친구가 생각나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의 향수 냄새도 저의 좋아함 목록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좋아하는 냄새나 향기는 많지만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추억의 냄새가 있기에 이번 글에서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건조기라는 물건이 아직 세상에 소개되지 않은 시절. 뜨거운 여름은 모두에게 자연 건조기 그 자체의 역할을 해주었었습니다. 얼마나 성능이 좋냐면 아무리 축축하게 젖은 옷이라도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양지에 올려두고 놀러 갔다 오면 순식간에 말라있었습니다. 어디 하나 젖은 곳 없이 모두 다요.

어머니는 바짝 마른빨래의 냄새가 꼭 햇빛냄새 같다며 좋아하셨습니다. 다 마른빨래를 거둬드리며 그곳에 코를 콕 박으시고는 "햇빛냄새 너무 좋지 않니? 그치 고운아." 하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매해 여름이 되면 온 집안의 옷들이 건조대에 널려져 있는 게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바짝 마른 옷은 또 얼마나 바스락 거리던지요. 빳빳하게 말려져 꼭 과자 같은 소리를 내는 그 옷들은 접는 재미도 주었습니다.


햇빛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단 저희뿐만이 아니었던지 여름이 되면 앞 뒤 옆 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햇빛을 찾아 빨래를 말렸습니다. 동네가 만국기를 단 것처럼 휘향찬란했지요.

어떤 때는 빨래를 구경하며 "어? 엄마가 저 티셔츠 빨아줬네! 내일 입어야지!" 하며 내일의 착장을 미리 골라놓기도 했습니다.


햇빛을 널어놓은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여름의 아이들은 햇빛을 잔뜩 머금은 옷을 입고 동네를 휘젓고 다녔습니다. 흙냄새에 혹은 땀 냄새에 묻혀 햇빛 냄새가 점점 사라져 가도 괜찮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또 어머니가 옷 속에 햇빛 한 줌을 넣어주실 거거든요.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햇빛 냄새 대신 건조기를 돌려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섬유유연제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누군가의 몸에서 좋은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면 어떤 건조기 시트를 사셨는지를 물어보고 함께 공동 구매를 하는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저희 가족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햇빛이 뜨거워지는 여름이 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햇빛이 잘 드는 거실 한켠에 건조대를 펼치십니다. 장마가 오기 전에 잔뜩 머금어놔야 한다면서요. 그럼 저는 그 옆에서 과자처럼 바삭바삭해진 옷들을 잘 개어놓고 있겠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족의 냄새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의 좋아함 목록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있을지 궁금합니다.

좋아하는것 하나 없는 세상과 그 안에서 사는 삶은 삭막하고 힘들기 그지없으니까요.


오늘 여러분의 일상에서 좋아함 목록을 채울 수 있는 행운을 만나길 진심으로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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