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떨어졌다. 농사를 짓고 계신 시댁으로 구호 물품 구하듯이 갔다. 연락도 없이 간 우리를 보고 거실에서 무언가 열심히 하시던 시어머니께서 깜짝 놀라며 맞아 주셨다. "어머니, 이건 뭐예요? 웬 받아쓰기 공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어머니는 탁자 위의 공책과 필통을 급하게 치우려 하셨다. 내가 궁금해 하자 받아쓰기 공책이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노인정에서 몇 년 전부터 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을 위해 문해 학교를 열었는데 망설이다가 지난해부터 한글을 배우러 다니신다고 했다.
가나다라 배우던 1학년 때는 쉬웠는데 이제 받아쓰기가 생겨 어려워져서 소위 예습을 하고 계시다 우리가 갑자기 와서 미처 숨기지를 못했다고 하셨다. 이 나이 되도록 한글을 모른다는 게 창피하고 다 늙어서 그걸 배우러 다니는 것도 민망해 자녀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계셨단다. 깍두기 모양의 네모 칸 안에는 평생 농사일로 다져진 힘과 한글을 배우려는 열정이 꾹꾹 눌러쓴 글씨에 그대로 묻어났다. “왜 창피해요. 우리 어머니 멋지시네. 글씨도 우리 가족 중 제일 잘 쓰시는데요." 내 말에 처음에는 창피하다고 하시던 시어머니는 천으로 만든 가방과 책, 연필 4자루를 가지고 나오셔서 문해 학교에서 이런 것도 줬다고 자랑하셨다. 이제는 버스 노선도 읽을 줄 알고 손주들 이름도 쓸 수 있게 되어 그게 제일 좋다면서 쑥스럽게 웃으셨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어느 날 우리 집으로 마실을 오셨다.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는 나를 보시던 할머니가 뜻밖의 부탁을 하셨다. "할머니 이름 좀 써볼래. 내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게." 그러고는 또박또박 한자 한자 말씀해 주셨다. 당신의 이름이 이렇게 생겼냐고 하시면서 손가락으로 글씨를 어루만지셨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할머니가 왜 그렇게 이른 봄날 핀 매화꽃 보듯이 글씨를 보는지 이유를 몰랐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께 이름 쓰는 거라도 가르쳐 드릴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자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핑계로 글을 배운다는 건 상상도 못했을 할머니와 시어머니. 이제라도 한글을 배우려고 문해 학교에 다니시는 용기 있는 발걸음에 마음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2학기에는 그림일기도 써야는데 걱정이 태산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잘해내실 거라 믿는다. 앞으로 쓰일 시어머니의 그림일기에는 밭에 무씨를 뿌리시던 날의 일, 아버님이 술을 드셔서 논에 물 대기가 늦어져 속상하다는 마음, 손주들이 와서 반가웠다는 이야기들이 그림과 함께 쓰일 거 같다. 아니 어쩌면 시인의 마음으로 글로 그림을 그릴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문해 학교 졸업식 날 병아리처럼 노란 프리지어 꽃다발 사서 간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