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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더하기 May 10. 2022

한약사의 삼계탕 처방

그때로 어서 돌아가고 싶다



“감사합니다. 고객사랑... 콜록콜록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 전화드릴게요. 콜록.”


전화 상담업무를 하는 나는 몇 년 전 이른 봄 어느 날 첫 전화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틀 전부터 목이 간질간질하더니 예상대로 아침에 기침이 시작된 것이다. 전화 상담업무에 있어 기침은 최대의 적이다. 언제 갑자기 시작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고객은 나의 좋지 않은 기침 소리를 들으면서 문의를 해야 한다. 상담은 길어지고 질은 당연히 떨어진다.  직접 만나 상담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화 상담원에게 목소리는 얼굴과 같다. 그래서 목소리에는 신뢰와 친절이 담겨있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따뜻한 물을 물고기처럼 계속 마셨다. 하지만 기침은 나아지지 않고 마신 물로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면서 오후 4시에 간신히 마감을 했다. 내과 의원에 들러서 집에 가야겠다는 말을 들은 옆에 앉은 직원이 사무실 근처에 새로 생긴 한약국에 가보란다. 한약재로 짖는 감기약인데 감기에 걸렸을 때 먹었더니 잘 나았다고 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퇴근하면서 들른 한약국은 한약 냄새가 문을 열기도 전에 먼저 나와 인사를 했다. 젊은 한약사는 어찌 왔는지 물었다. 기침이 오늘 아침부터 났고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인데 아주 불편하다고 했다. 표정을 과하게 찡그려 많이 아픈 듯이 보이게 했다. 빨리 낫는 약을 처방해달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그런데 한약사는 밝게 웃으며 나에게 뜻밖의 처방을 해주었다.


“오늘 아침부터 기침이 났다고요? 그럼 약 드시지 마시고 집에 가시다가 마트에 들러서 닭 세 마리 사서 삼계탕 끓여 드세요. 그래도 안 나으면 다시 오세요. 그때 약 지어 드릴게요.”


난 살면서 감기약 처방을 삼계탕으로 하는 곳은 처음이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히 서 있었다.

“요즘 따뜻해졌다고 춥게 입고 다시셨죠? 지금 보니 코트도 여미지 않고 다니시고 그러면  가슴으로 찬바람 들어가요.”

그러니 따뜻한 삼계탕 국물로 가슴에 들어간 찬 기운 데우고 닭고기로 단백질 보충하란다. 닭이 세 마리인 거는 그만큼 진하게 우려내서 먹으라는 뜻이고 대추, 마늘도 넣으니까 비타민 보충도 될 거라는 설명이다. 저항력 증가와 피로 해소에 좋은 인삼도 함께 넣으라는 레시피를 친절하게 덧붙여 줬다.


내가 아는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어쩌고 저쩌고였는데 뭐지? 하면서도 한약사의 진지한 설명이 왠지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한약사 말대로 집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러 삼계탕용 닭 세 마리와 한약재 모둠이 들어있는 팩과 통마늘, 진열된 것 중에 제일 큰 인삼이 세 개 들어있는 것도 한 팩 사서 집으로 왔다. 닭 세 마리를 한꺼번에 넣고 끓여 보기는 처음인 거 같다. 곰국 끓일 때나 한번 가스 불에 엉덩이 좀 올려보는 큰 냄비를 꺼내고 재료를 다 넣고 끓였다. 쌉싸름한 인삼 냄새, 대추의 달콤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다. 국물은 흰 우유를 넣고 끓인 것처럼 닭 세 마리의 위용을 뽐내듯이 뽀얗다. 그걸 3일에 걸쳐서 지겹지만 꾹 참고 몸 안 챙긴 벌을 받듯이 데워서 먹었다.  그 3일 동안 기침은 심해졌다가 나아졌다가를 반복하면서 신기하게도 다 먹어갈 때 즈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그 뒤 나는 누군가 감기에 걸린 거 같다는 소리가 들리면 ‘마트에 들러 닭 세 마리 사서 푹 끓여 드세요.  그러면 가슴에 들어갔던 찬 기운 녹아요.  몸에 보양도 돼서 면역력도 생기고요.’ 그때 그 한약사처럼 나도 모르게 친절한 레시피도 함께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성냥불을 꺼트릴 만한 가벼운 기침에도 예민하고 긴장해야 할 지금,  
삼계탕 처방도 믿고 따랐던 그때로 어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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