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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더하기 Jan 12. 2022

뚝배기를 내놓으라고요

어디에 담고 있는 거지?


 모든 것을 멈춰 버리라는 사명을 받은 듯 흰 눈이 새벽부터 쉴 새 없이 내린다.

이십 년 가까이 다닌 길이지만 오늘은 초행길인 듯 생경하게 흰 눈이 거리를 바꿔 놓았다. 보이지 않는 차선과 자꾸만 미끄러지는 자동차 바퀴를 달래며 간신히 출근을 했다.


폭설은 점심을 뭐로 먹을까? 고민 따위는 필요 없게 만들었다. 사무실 바로 아래층에 있는 두부전문점에 가서 순두부찌개를 먹기로 하고 직원과 내려갔다. 사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어쩌다 갈데없으면 가는 곳이지만 지역에서 두부전문점으로는 이름 꽤나 알려진 곳이다. 매일 새벽에 직접 키운 콩으로 두부를 쑤고 솜씨 좋은 아주머니의 반찬들은 손님을 불렀다.


“순두부찌개 두 개요.”

주문을 하고 보니 홀에는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에 동참해달라는 설명서가 테이블 간격을 두고 일정하게 붙여진 것이 보였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둘은 여기도 코로나19를 피해 갈 수 없다는 둥, 어쩌면 좋냐는 둥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이 식당에서 전혀 보지 못했던 헬맷을 쓴 배달업체 직원이 들어왔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배달을 안 하려고 했는데 우리도 먹고 살려니 불렀네요. 미안합니다.”

식당 주인이 배달업체 직원에게 미리 포장한 두부전골과 바구니에 가득 담긴 초콜릿 사탕을 몇 개 집어 건네며 말했다.


“언제 손에 익으려나 모르겠네요. 배달하는 사람들 위해서 초콜릿도 사다 놨다는 거 아니에요."


한숨이 반 섞인 넋두리가 허공에 번진다. 코로나19로 줄어든 손님으로 매출이 반토막도 더 났단다. 이 참에 그냥 가게를 접고 쉴까도 생각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아쉽고 아까워서 시집간 딸을 호출해 배달업체를 통해 장사하는 방법을 배웠단다. 그렇게  일주일이 되었는데 나이 먹어서 그런가 기기를 어찌 쓰는지 할 때마다 헷갈린다고. 우리는 보지고 않고 혼자 하는 말이다.


얼마 후 순두부찌개는 플라스틱 배달용기에 담겨 나왔다. 반찬들도 사각틀로 되어있는 배달용기에 나왔다. 배달업무를 배우느라고 홀에서  차려지는 건 못하고 있다고 양해를 구했다. 맛은 변함 없었지만 내가 기대한 펄펄 끓어 뚝배기 밖으로 국물이 넘치 말캉하고 구수한 순두부찌개가 아니어서 서운했다.

새삼 담기는 것에 중요성이 실감 나는 순간이지만 '뚝배기에 담아주세요.' 차마 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내 인생은 어디에 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담고 있는 걸까, 담겨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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