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더하기 Feb 19. 2022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플러그가 뽑혔다. 13년을 같은 자리에서 상담업무를 하던 팀원의 퇴직은 그렇게 5초의 시간도 허비되지 않고 마무리가 되었다. 드라마에서처럼 박스 가득 본인 물건을 들고나가는 그런 그림은 연출되지 않았다. 출근할 때 들고 왔던 A4용지만 한 가방에 더 채워지는 것은 없었다. 주인을 잃은 컴퓨터의 전원 플러그를 뽑으면서 자리는 정리가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생활정보지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건 1년 전부터였다. 몇 해 전부터 시작된 전반적인 경기 부진이 제일 큰 문제였다. 시대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생활정보지의 한계점도 한 몫 했는지 모르겠다. 매출은 급감했고 직원들 월급을 충당할 수 없었던 회사에서는 정년보장이라는 희망의 플러그도 뽑아 버렸다.


3년 전만 해도 회사는 오늘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되었다. 상담직원들의 전화는 모든 직원이 통화 중에도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영업 직원들은 나가면 3개월, 6개월 홍보 광고를 하루에도 몇 건씩 계약을 해오는 실적을 냈다.

수입이 좋았던 회사에서는 8페이지라는 적지 않은 지면을 지역의 소식과 미담, 맛집들 소개로 할애했다. 이 지면은 모두 지역민을 위한 무료 소개 지면이었다. 지역의 고등학교에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고, 무료 영화제도 열었으며 창간 기념일에는 떡을 해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상담전화는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도 울리는 않는 시간이 늘어났다. 외근을 나갔던 영업 직원들은 계약서 없이 들어오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다. 8페이지의 무료 지면이 팔자주름만큼 근심거리가 돼버리게 매출이 극감 한 것이다.


“이제 한 직업만 생각하는 시대는 아닌 거 같아요.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나니 미래에 계획이 없었던 게 후회가 되네요. 다들 다음 직업을 위해서 무언가 배워 두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

같은 상담업무를 했던 팀원의 송별회 인사말이 가슴에 가시처럼 꽂혔다. 그 후로 편집 직원, 배포 직원의 감원과 상담직원의 감원이 계속 이어지면서 그다음 대상자가 내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잘하는 것도 하나 없던 나는 여성회관에서 하는 프로그램 중 바리스타 자격증 2급 과정을 신청했다. 특별히 바리스타로 취업을 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무엇이든 해야 할거 같았다. 야간에 하는 10명 모집 수강신청은 인터넷 접수 5분도 채 안 돼서 끝이 났다.


첫 수업에 모인 수강생들에게 강사는 자기소개를 시켰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도 함께. 회사원으로 일을 하던 젊은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일을 그만두었단다. 어린이집에 등원하게 되면 바리스타로 취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폐백음식을 50년간 만드신다는 70대 어르신은 결혼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앞으로 비전이 없을 것 같아 카페 창업을 희망해서 등록했다고 했다. 나와 같이 실직이 걱정되어서 등록한 수강생이 대부분이었다. 다양한 나이와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3개월간 매주 수요일 7시 30분부터 9시까지 하는 수업이 힘들기도 했지만 중간에 빠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른오징어를 가위 하나만으로 꽃을 만들던 70대 폐백음식의 장인은 가위 대신 흰색 커피잔을 손에 올리고 카페라떼를 만들기 위해 흰 우유로 하트를 만들었다.


나는 퇴근 후 매주 수요일은 저녁을 굶으면서 여성회관으로 행했다. 주말 펜션으로 놀러 갔던 한 수강생은 다들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시간에 주방에 나와 밤새 필기시험 공부를 했다고 했다. 우리 10명은 하나 같이 절박함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일상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알아봐 줘서 고마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