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산 호랑이'는 올해 83세가 되신 친정아버지의 sns 닉네임이다. 퇴직을 하시고 일주일 만에 지역 자치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프로그램에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등록하셨다. 메일 보내는 방법을 배워서 연습을 했는데 잘 갔는지 확인해 달라고 일하고 있는 나에게 전화가 왔다.
'열매산 호랑이'가 보낸 첫 메일이었다.
'사랑하는 마ㄱ내딸. 메일 보내는 ㅕ습하는 중'
오타와 함께 온 단 한 줄이 메일 내용의 전부였다. 메일을 읽고 또 읽으면서 한 자 한자 찾으며 썼을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열매 산은 친정 동네 뒷산 이름인데 아버지 말로는 옛날 옛날에는 호랑이가 살던 아주 깊은 산이었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발 2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호랑이가 살았을 거 같지는 않았다. 열매 산은 어릴 적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숲이 우거지는 여름이면 칡넝쿨을 잘라 나무에 대충 걸쳐놓고 기지를 만들어 총싸움을 했고,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지푸라기를 넣은 비료포대를 들고 나와 소복한 눈이 다 녹아 흙이 보일 때까지 비료포대를 타면서 놀던 곳이다. 작은 토끼가 나오면 나왔지 호랑이가 나올 산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열매산에는 호랑이가 살았었고 그 호랑이의 기백을 닮고 싶은 의미로 모든 닉네임을 '열매산 호랑이'로 지었다고 하셨다.
어느 날 아버지는 스마트폰을 개통해 오셨다. 전화받기, 걸기 등 매장에서 기본을 배워오신 날부터 배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컴퓨터 스승이 자치센터 강사였다면 스마트폰 스승은 온 집안 식구들이었다.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 막내 조카부터 50대 중반이 된 큰아들까지 궁금한 게 있으면 메모를 해 놨다가 물어보셨다. 그중에서 막내 조카가 제일 좋은 스승이었다. 다 알 거 같은 할아버지가 아주 간단한 sns 보내기부터 사진 저장, 유튜브 보기 이런 걸 물어보니 신이 났던 것이다. 반면 나머지 자녀들은 한 마디씩 하면서 가르쳐드렸다.
"지금 그 연세에 머리 아프게 뭐하러 이런 걸 배우신다고 하세요."
하면서 대충대충 가르쳐 드린 것이다. 그렇게 손 안의 세상을 접한 뒤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사진을 전송하고 혼자 고속버스 예매를 하셨다고 자랑을 하셨다.
왜 80이란 나이는 아무것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을까?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 '열매산 호랑이'의 좌우명은 이것이었는데 죽을 때까지 궁금한 게 있으면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게 기본 신조였던 그가 배움에 이끼가 끼는 것을 허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