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더하기 Jan 11. 2022

열매산 호랑이

왜  80이란 나이는 아무것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을까?


 '열매산  호랑이'는 올해 83세가 되신  친정아버지의 sns 닉네임이다. 퇴직을 하시고 일주일 만에 지역 자치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등록하셨다. 메일 보내는 방법을  배워서 연습을 했는데  잘 갔는지 확인해 달라고 일하고 있는 나에게 전화가 왔다.

'열매산 호랑이'가 보낸 첫 메일이었다.

'사랑하는 마ㄱ내딸. 메일 보내는 ㅕ습하는  중'

오타와 함께 온 단 한 줄이 메일 내용의 전부였다. 메일을 읽고 또 읽으면서 한 자 한자 찾으며 썼을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열매 산은 친정 동네 뒷산 이름인데 아버지 말로는 옛날 옛날에는 호랑이가 살던 아주 깊은 산이었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발 2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호랑이가 살았을 거 같지는 않았다. 열매 산은 어릴 적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숲이 우거지는 여름이면 칡넝쿨을 잘라 나무에 대충 걸쳐놓고 기지를 만들어 총싸움을 했고,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지푸라기를 넣은 비료포대를 들고 나와 소복한 눈이 다 녹아 흙이 보일 때까지 비료포대를 타면서 놀던 곳이다. 작은 토끼가 나오면 나왔지 호랑이가 나올 산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열매산에는 호랑이가 살았었고 그 호랑이의 기백을 닮고 싶은 의미로 모든 닉네임을 '열매산 호랑이'로 지었다고 하셨다.


 어느 날 아버지는 스마트폰을 개통해 오셨다. 전화받기, 걸기 등 매장에서 기본을 배워오신 날부터 배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컴퓨터 스승이 자치센터 강사였다면 스마트폰 스승은  온 집안 식구들이었다.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 막내 조카부터 50대 중반이 된 큰아들까지 궁금한 게 있으면 메모를  해 놨다가 물어보셨다.  그중에서 막내 조카가 제일 좋은 스승이었다. 다 알 거 같은 할아버지가 아주 간단한 sns 보내기부터 사진 저장, 유튜브 보기 이런 걸 물어보니 신이 났던 것이다. 반면 나머지 자녀들은 한 마디씩 하면서 가르쳐드렸다.

"지금 그 연세에 머리 아프게 뭐하러 이런 걸 배우신다고 하세요."  

하면서 대충대충 가르쳐 드린 것이다. 그렇게 손 안의 세상을 접한 뒤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사진을 전송하고 혼자 고속버스 예매를 하셨다고 자랑을 하셨다.


 왜  80이란 나이는 아무것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을까?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
'열매산 호랑이'의 좌우명은 이것이었는데 죽을 때까지 궁금한 게 있으면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게 기본 신조였던 그가 배움에 이끼가 끼는 것을 허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