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워킹 맘이 아닌 '그냥 맘'이다.

by 오더하기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보면 바로 위에 층 복도에서 바쁜 엄마의 목소리와 느긋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린다. 나의 출근시간과 위에 층 아이들의 등원 시간이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날 때가 많다. 이제 5살 6살 되는 연년생 자매를 둔 출근하는 엄마는 어떤 날은 겉옷도 다 못 입고 나온 큰아이의 옷에 팔을 끼우면서 인사를 하고, 어떤 날은 채 묶지 못한 동생의 머리를 매만지며 정신이 하나 없다면서 쑥스럽게 인사를 한다. 그 엄마의 다급하고 답답한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나는 유치원 버스를 타러 종종거리며 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참 좋아한다. 이유는 내가 일을 시작한 시기의 아이들과 나이가 비슷해서 일 것이다. 어쩌면 그때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안쓰럽기도 하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작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 소위 말하는 워킹 맘의 길에 합류했다. 시작할 때는 가정적인 남편이 많이 도와줄 것이고, 이제 혼자 학교에 다닐 정도가 된 큰 아이를 믿었고, 쾌활한 성격의 작은 아이가 씩씩하게 잘 견뎌 주리라는 생각이었다. 나의 착각은 출근한 지 1주일 만에 무너졌다. 가정적인 남편은 비상근무의 연속이었다. 혼자서 학교에 잘 다니던 큰 아이는 준비물을 빼놓고 가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하굣길에 친구들과 큰 통학로를 놔두고 논두렁으로 오다가 미끄러져 논으로 빠져 집에 왔지만 혼자 씻었다고 했다. 쾌활한 작은 아이는 열감기가 찾아와 약봉지를 가방에 넣고 울면서 유치원 버스에 올랐다. 도어록도 없던 시절이어서 아이들이 열쇠를 놓고 나간 날은 이웃집에서 또는 친구네서 엄마가 올 때까지 눈치를 보면서 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엄마 회사 그만둘까?" 몇 번을 물어보면서도 여기서 그만두면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이기심으로 암담하고 정신없는 출근길은 반복이 되었다. 그사이 집에는 맨 먼저 나가는 사람이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식탁을 차리고, 맨 나중에 나가는 사람이 식탁을 정리했다. 세탁물은 누구든 본 사람이 정리하는 아무도 정하지 않은 규칙이 생겼다. 분명 아름다웠던 모습을 놓치고 간 시간도 많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서운했을 것이고, 나 또한 공든 탑이 무너지듯 만족스럽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다시 무너지는 모습에 화도 났을 것이다. 그 어설프고 힘든 시간들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하는 힘을 길렀다. 가정과 일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들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엄마는 어떻게 우리도 키우면서 일을 했어? 그때는 토요일에도 일하고... 일 만하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아이가 어느 날 이렇게 말해 미소로 답을 해주었다.

이제 혼자 식탁을 차리고 정리하면서 출근 준비를 한다. 더 이상 병원에 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현장체험학습에 들고 갈 도시락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나는 워킹 맘이 아닌 '그냥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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