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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더하기 Jan 10. 2022

난 워킹 맘이 아닌 '그냥 맘'이다.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보면 바로 위에 층 복도에서 바쁜 엄마의 목소리와 느긋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린다. 나의 출근시간과 위에 층 아이들의 등원 시간이 비슷하기 때문에 우린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날 때가 많다. 이제 5살 6살 되는 연년생 자매를 둔 젊은 엄마는 어떤 날은 겉옷도 다 못 입고 나온 큰아이의 옷에 팔을 끼우면서 인사를 하고, 어떤 날은 채 묶지 못한 동생의 머리를 매만지며 정신이 하나 없다면서 쑥스럽게 인사를 한다.


 그 엄마의 다급하고 답답한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나는 유치원 버스를 타러 종종거리면서 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참 좋아한다. 내가 일을 시작한 시기에 작은아이가 딱 저 작은 아이의 나이 때였다. 어쩌면 그때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안쓰럽기도 하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작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 난 소위 말하는 워킹 맘의 길에 합류했다. 시작할 때는 가정적인 남편이 많이 도와줄 것이고 이제 혼자 학교에 다닐 정도가 된 큰아이를 믿었고, 쾌활한 성격의 작은 아이가 씩씩하게 잘 견뎌 주리라는 생각이었다. 나의 착각은 출근한 지 1주일 만에 무너졌다.


가정적인 남편은 비상근무의 연속이었다. 혼자서 학교에 잘 다니던 큰아이는 준비물을 빼놓고 가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하굣길에 친구들과 큰 통학로를 놔두고 논두렁으로 오다가 미끄러져 논으로 빠져서 집에 왔지만 혼자 잘 씻었다고 했다. 그때의 암담함이란. 쾌활한 작은아이는 열감기가 찾아와 약봉지를 가방에 넣고 울면서 유치원 버스에 올랐다. 도어락도 없던 시절이어서 아이들이 열쇠를 놓고 나간 날은 이웃집에서 또는 친구네서 엄마가 올 때까지 눈치를 보면서 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엄마 회사 그만둘까?"


 몇 번을 물어보면서도 어떻게 지금까지 견뎌왔는데 여기서 그만 두면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이기심으로 다급하고 정신없는 출근길은 반복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집에는 맨 먼저 나가는 사람이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식탁을 차리고 맨 나중에 나가는 사람이 식탁을 정리했다. 세탁물은 누구든 본 사람이 정리하는 아무도 정하지 않은 규칙이 생겼다.


아이들은 커가고 있었다. 분명 힘든 날들도 있었다. 아름다웠던 모습을 놓치고 간 시간도 많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서운했을 것이고, 나 또한 공든 탑이 무너지듯 만족스럽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다시 무너지는 모습에 화도 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워킹 맘의 길을 선택했을 것 같다. 그 어설프고 힘든 시간들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하는 힘을 길렀고 나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그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한 큰아이와 군대에 가있는 작은아이는 집에 없다. 이제 혼자 식탁을 차리고 정리하면서 출근 준비를 한다. 더 이상 반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현장체험학습에 들고 갈 도시락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보다 여유로운 출근 시간과 누구보다 여유로운 퇴근 후의 시간들이다.


이제 난 워킹 맘이 아닌 '그냥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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