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름 좀 써볼래. 내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게"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화다.
가슴에 베개를 깔고 연탄불로 따뜻해진 아랫목에 엎드려서 숙제하고 있었다. 같은 동네 큰댁에서 사시는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마실을 오셨다. 오실 때 마다 호주머니에는 손주들에게 줄 사탕을 몇 개 넣어오셨는데 그날은 집에 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는 나에게 사탕을 주면서 조심스레 말을 건네셨다.
"그게 글씨냐?"
"할머니 글씨 몰라? 이게 글씨 맞지."
한참을 말없이 나를 보시던 할머니가 나에게 뜻밖의 부탁을 하셨다.
"할머니 이름 좀 써볼래. 내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게"
나야말로 창피하지만, 그때까지 할머니 성함이 뭔지 몰랐었다.
유. 영. 애.
본인의 연예인같이 예쁜 이름을 또박또박 말해주셨다. 할머니 이름에는 동그라미가 네 개나 들어간다고 신기하다고 웃었던 거 같다. 내 이름이 이렇게 생겼냐고 하시면서 글씨를 지그시 보시던 모습이 지금도 또렷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할머니가 왜 그렇게 이른 봄날 핀 매화꽃 보듯이 글씨를 보는지 이유를 몰랐었다.할머니는 자신의 이름도 못 배우고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