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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더하기 Jan 12. 2022

시어머니의 한글 공부

"할머니 이름 좀 써볼래. 내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게"


쌀이 똑떨어졌다.


구호 물품 구하듯이 전화를 드리고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시댁으로 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시부모님은 올 가을에 수확한 쌀을 가정용 정미기로 찧고 계셨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도정을 하는 동안 시어머니는 잘 익어서 사탕같이 달다며 홍시를 가지고 오셔서 탁자에 놓으셨다.


"어머니 이건 뭐예요?. 웬 받아쓰기 공책?"

"아이고야 그게 왜 거기 있다니 창피하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어머니는 탁자 위의 공책과 필통을 급하게 치우려 하셨다. 나는 궁금해서 물었고, 받아쓰기 공책이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노인정에서 작년부터 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을 위해 문해 학교를 열어서 한글을 배우러 다니신단다.


ㄱ, ㄴ 배우던 1학년 때는 쉬웠는데 이제 2학년이 되면서 받아쓰기가 생겨 어려워졌단다. 소위 예습하고 계셨는데 우리가 갑자기 쌀을 가지러 와서 미처 숨기지를 못했다는 말씀이다. 이 나이 되도록 한글을 모른다는 게 창피하고 다 늙어서 그걸 배우러 다니는 것도 민망해서 자녀들에게는 비밀로 하셨단다.


"왜 창피해요. 와 우리 어머니 멋지시네, 글씨도 우리 가족 중 제일 잘 쓰시는데요."

깍두기 모양의 네모 칸 안에는 평생 농사일로 다져진 힘과 한글을 배우려는 열정이 꾹꾹 눌러 쓴 글씨에 그대로묻어났다.


처음에는 창피하다고 하시던 어머니는 천으로 만든 가방과 책, 연필 4자루도 가지고 나오셔서 노인정 문해 학교에서 이런 것도 줬다면서 자랑하셨다. 이제는 버스 노선도 읽을 줄 알고 당신 이름도 쓸 수 있게 되어 그게 제일 좋다면서 쑥스럽게 웃으셨다. 글로 이름을 쓸 수 있다는 이 당연한 것을 나이 80이 다 되어서야 할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화다.

가슴에 베개를 깔고 연탄불로 따뜻해진 아랫목에 엎드려서 숙제하고 있었다. 같은 동네 큰댁에서 사시는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마실을 오셨다. 오실 때 마다 호주머니에는 손주들에게 줄 사탕을 몇 개 넣어오셨는데 그날은 집에 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는 나에게 사탕을 주면서 조심스레 말을 건네셨다.

"그게 글씨냐?"
"할머니 글씨 몰라? 이게 글씨 맞지."

한참을 말없이 나를 보시던 할머니가 나에게 뜻밖의 부탁을 하셨다.
"할머니 이름 좀 써볼래. 내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게"

나야말로 창피하지만, 그때까지 할머니 성함이 뭔지 몰랐었다.
유. 영. 애.
본인의 연예인같이 예쁜 이름을 또박또박 말해주셨다. 할머니 이름에는 동그라미가 네 개나 들어간다고 신기하다고 웃었던 거 같다. 내 이름이 이렇게 생겼냐고 하시면서 글씨를 지그시 보시던 모습이 지금도 또렷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할머니가 왜 그렇게 이른 봄날 핀 매화꽃 보듯이 글씨를 보는지 이유를 몰랐었다.할머니는 자신의 이름도 못 배우고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께 이름 쓰는 거라도 가르쳐 드릴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자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핑계로 글을 배운다는 건 상상도 못했을 할머니와 시어머니다. 이제라도 한글을 배우려도 문해 학교에 다니시는 용기 있는 발걸음에 마음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는 그림일기도 써야 한다면서 걱정이 태산이라고 하셨다. 문해 학교에서 받아온 것들을 소중하게 가방에 넣어 방으로 가져다 놓으셨다.


앞으로 쓰여질 시어머니의 그림일기에는 밭에 무씨를 뿌리시던 날의 일, 아버님이 술을 드셔서 논에 물 대기가 늦어져 속상하다는 마음, 손주들이 와서 반가웠다는 이야기 등 그림과 함께 쓰일 거 같다. 

아니 어쩌면 시인의 마음으로 글로 그림을 그릴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문해 학교 졸업식 날 병아리처럼 노란 프리지아 꽃다발 사서 간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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