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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눈물의 수도꼭지를 스스로 틀길 바라는 마음으로.

by 후기록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2013)


영화가 떠오른 건, 언젠가, 어떤 풍경에서, 누군가 ‘마담 프루스트 같네’ 라고 한말이 갑자기 떠올라서. 담쟁이가 올라온 벽 앞에 빨간 테이블이 놓인, 가까운 시일에 내린 빗자국에 먼지랑 흙이 좀 묻어선 노랗다고 해야 할지 녹빛이라 해야 할지 모를 얼룩이 좀 져있었고. 갑자기 생각난 풍경에, 그날의 날씨가 생각났다. 그날처럼 선연한 바람이 곧 올 텐데, 이제야 ’가을‘이 좀 오겠네. 하는 생각.


‘프루스트’라는 이름에 무언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꽤 독서중독자. 힌트를 주자면 차와 마들렌. 맞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딱히 그런 모티프를 숨기려는 생각은 없는지 이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선 첫 장면의 인용구는 그의 말이, 그리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소재로는 차와 마들렌이 등장한다. 심지어 서브 주인공이름이 ‘마담 프루스트‘잖아. 일종의 헌정일지도 모르겠다. ‘머임 프루스트 효과임?’ 하면서 혼자 낄낄대면서 봤네.


말을 못 하는 장애가 있는 주인공 ‘폴’의 성장영화였다. 사랑받고 보호받는 폴. 다만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삶이지만 서도.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던 엄마는 왜 그리 그리운지, 아빠가 나오는 꿈만 꾸면 왜 악몽인지. 의문 투성이지만 이모들의 사랑은 적당히 만족스러운 듯하기도 하고. 생각해 보니 별 불만 가질 게 없는 듯하다. 나는 시키는 대로만 잘하면 되니까. 근데 왜 이리 공허하지? 12살짜리의 생일파티라고 할만한 생일이 지나고 나선(폴은 32살이다.), 이런저런 우연과 우연이 겹쳐 만나게 되는 ‘마담 프루스트’ 놀랍게도 ‘기억을 되살리는 차’를 판매하는 그녀와 엮여 도움을 받고, 한편으론 친구가 되며, 영원히 그녀를 기억하게 되는 일까지가 영화의 줄거리.


기억 혹은 추억이란 거 말이야, 가끔은 그 가치가 너무 과소평가되는 건 아닐까 생각을 자주 해. 닳고 닳은 이야기지만, 우리가 ’우리‘라고 믿고 생각하게 하는 일들 말인데. 그거 결국 단순한 ‘기억‘의 재생일지도 몰라. 만약 우리가 모든 걸 잊어버렸을 때, 아니면 다른 사람의 기억이 새로 쓰였을 때. 아니면 소위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경험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명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조금 무서워져.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과연 정확할까. 그리고 그 대부분은 정확하지 않다는 게, 기억되기 위한 첫 단추인 관측의 지점부터 왜곡이 된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필연인데. 게다가 어떤 기억들은 죽을듯한 괴로움으로, 어떤 기억들은 죽어가던 삶에 한줄기 빛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그 중요성에 다시 한번 깨닫게 되기도 하고. 다만 재밌게도 상기한 두 개의 기억이 사실은 하나라면? 그저 쓰이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읽힌 ‘하나의 기억’이었다면? 그 지점에서 영화는 묻는 듯해.


‘당신의 기억, 행복한가요?’라고 말이야.


프랑스 영화라서 그런지 어디서 변주가 일어날까 걱정이 이만 자만 아니면서 뵜는데, 너무도 완벽한 해피엔딩에 눈물이 글썽. 폴의 흉터였던 추억을 톺아보는 과정부터 ‘새로운 추억’이 될 프루스트 부인을 기억하는 방법.


그리고 ‘pa pa’.


얼마만이야. 이런 성공적인 심리치료. 오프닝 시퀀스의 악몽 속 폴의 아버지도 사실은 ‘사랑한다’라고 말했을 거란 믿음을 약간이나마 가져봐.


어느 누가 말하길 ’ 최초의 타임머신은 ‘이야기’다.’라는 말이 떠오르곤 해. 그리고 이야기라는 건 굳이 쓰이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시간에 새겨진걸 다시 꺼내는, ‘재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돌고 돌아도 기억이란 지점에 도착하게 되는 듯해.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기억. 과연 좋은 기억일까 나쁜 기억일까. 우리에겐 버섯차도 프루스트 여사도 없지만, 어쩌면 그것에 맞서 직접 확인해야 할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을지도 몰라. 그때 이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보면서. 그리고 조력은 조력일 뿐, 결국 폴처럼 스스로 수도꼭지를 틀어낼 수 있는 우리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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