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아직도 아파하고 있을 너에게.
어떤 영화들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는 식으로 운을 띄워볼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어.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네 생각이 났는지, 20대를 ‘조용한 분노’로 가득 채웠던 너.
너에게 이런 ‘관계’가 있었으면 조금은 달랐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
너의 20대의 인간관계는 참 많이 아팠던 걸로 기억해.
내가 아는 너는, ‘사랑이 너무 많아서, 어디로 사랑을 줘야 할지 모르는’ 애였는데.
그래서 참 그 어디는 부드럽고, 또 어디는 날카로운, 제멋대로 생긴 사랑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그때, 네가 얼마나 아팠고 또 남을 아프게 했는지, 그런 너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네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눈빛들이 기억이 나더라고.
영화 속의 재희의 대사.
“나도 날 잘 모르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해?”
라고 내뱉으며 울음을 터트릴 때, 어떻게 너는 그 대사를 미리 알아서 10년이나 전에 말을 했던 걸까. 울던 네 얼굴이 생각나서 분명 슬픈 장면인데 약간 웃음이 났어.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너의 두려움이 아니라, 편안함으로 닿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 역시 영화 속 ‘흥수’처럼 ‘나의 비밀을 누군가 알 것이다.’는 것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잘 알고 있으니까.
네가 그 ‘비밀’들을 ‘시기적절치 못했던 사랑’들에게 건네줬을 때.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돼서 어디를 찌르면, 어디를 찢어내면 죽는 것보다 더 아프게 만들 수 있을 관계가 되고, 결국 그렇게 됐을 때.
네가 지금의 나를 찾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릴없이 네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 세상이 원래 친절하지 않아서 그래.‘라는 말을 하며 스스로 무너지던 너에게
그게 아니라고. 이제는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너는 ‘재희’도 ‘흥수’도 가지고 있던 애라서, 그래서 혼자 모든 걸 해결했어야 했던 걸까? 어떤 면에선 나 조차도 너에게 닿을 수 없을 때가 많아서, 너. 정말 외로웠겠다.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너 역시, 나를 포함한 너를 사랑해 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네 비밀을 이야기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주며, 네 사랑이 많은 성격마저 농담거리도 받아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그걸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거나, 그럴 건 아니라고 봐.
다른 사람들이랑 별다를 것 없어. 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고 느끼면,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돼. 별로 복잡할 것도 없이 말이야.
‘소수성’이란 뭘까? 나는 요즘 들어선, 이런 생각을 하곤 해. 모든 사람들을 겹쳐놓고, 겹친 부분을 빼면 그게 ‘소수성’이라고. 네 성격엔 ‘그게 무슨 말이냐고’되 물을 테니,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결국 모두가 각자의 ‘소수성’을 가진다는 거 아닐까? 사람들은 너무 쉽게 ‘소수자’가 정말 ‘소수’일 거라고 생각하곤 하지. ‘성’에서도 ‘성향’에서도. ‘지식’이나 ‘성별’. ‘장애’나 더 나아가선 어떤 ’ 아이덴티티‘까지도. 그 모든 걸 배척하고 나서 남은 걸, 과연 ’ 표준‘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애석한 ‘집단’이라는 게 존재하는 세상에 살아서.
잠깐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이에, 더러운 놈이라서 네 책상이 구석으로 밀려있는 일을 겪기도 하고.
하릴없는 소문에, 타인에게 불려 가 애먼 따귀와 발길질을 당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못난 사랑을 해서, 몸도 마음도 망가진채 탈각된 부품들을 넝마주이 할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우리가 스스로 그런 집단의 테두리에 맞춰 깎아내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해. 적어도 너를 보는 나는, 그것마저 너인걸 알고 있잖아.
너의 ‘경험’이라는 게, 생채기부터 파열까지 혹은 그 이상의 고통들 이였더라도.
이렇게 살아서, 조금은 웃을 일을 만들어낸다는 게 참 다행이야.
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랑’을 믿는다는 게 가끔 너와 대면할 때 느껴져서. 그게 참 감사할 때가 많아.
“영화가 재밌었나 보네;;;”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할 네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 웃긴다.
응 정말 재밌었어. 참 그 짧은 새 얼마나 울고 웃었는지.
다음엔 같이 보러 가자. 네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거든.
언제나처럼, 난 항상 네가 궁금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