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의 폭풍 속에서, 항해하는 우리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일기시대> - 문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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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거꾸로 먹는 벤자민의 삶을 그려내는 영화. 다만 그게 얼마나 중요한 설정일까.
죽어가는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딸.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여자는 딸에게 한 남자의 일기를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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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표현되듯, 드라마를 그려내는 병실안과는 다르게 ‘세계’는 하나의 폭풍이다. 의지도 선악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일어날 일일 뿐인 부조리라는 단 하나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불친절한 세계. 우리는 거기서 관계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며 이 길고 지루한 삶에 별을 하나씩 심어두며 삶을 그린다. 그 별이 찬란할 수도, 아니면 블랙홀만큼 절망 적일 수도. 그리고 결국 이 ‘좋고, 나쁨’마저도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냐를 거치고 나서 그 가치를 매기는 일인 것이지.
남들과는 다른 벤자민의 삶은, 그 다른 특수성과는 별개로 ‘삶의 형태’로만 봤을 땐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하나의 이벤트들을 뽑자면 놀라울 드라마지만. 어느 누구가 그러지 않겠는가. 기연을 만나고, 타인의 덕을 보고, 사랑을 하고, 그리움을 쌓는다. 본인만의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한들, 세계의 시간은 ‘언제나처럼’ 일방통행 이면서 결국엔 모든 것에게 ‘끝’이라는 걸 준다.
그 ‘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만약에 ‘삶’이란 게 유한하지 않다면, 과연 우리는 어디서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볼 부분이다.
상기했듯 우리의 삶은 벤자민과 데이지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정말로. 우리의 삶은 폭풍 같은 세상 속 ’ 우연‘과 ’ 선택‘에 의해 쓰이고 앞으로도 쓰일 것이다. ‘최선’의 선택이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고, ‘최악’의 선택이 언제나 나쁘기만 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좀 알만한 나이가 되어 보니, 너무 어렸을 때 봤던 이 영화도 참 때에 맞지 않게 만났었구나.라는 생각을 좀 해본다. 물론 지금에 와서 느낀 이 감정의 격동 역시 지금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최근에 떠올렸던 문장 중에 ‘우연을 의심하지 말자’는 문장을 떠올리고 나서 이 영화를 만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이 세계가 나에게 건네주는 것들은 전부 선물일지도 모른다. 어떤 시련도, 어떤 만남도. 결국 모든 것은 겪고 난 다음의 ‘나’를 만드는 하나의 적층이니깐. 우리는 유한한 삶에서 결국 나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 올라와 있으니깐 말이다.
모든 이야기는 끝이 있어야 그 가치가 완벽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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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너무 완벽한 인생을 산 벤자민보단, 데이지의 삶에도 집중이 됐다. 어쩌면 드라마틱하다는 삶에는
벤자민보다 데이지가 더 어울리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벤자민을 사랑해서 생긴 슬픔’에 치얼스. 아마 이영화에서 가장 ‘삶’ 다운 삶을 산건 다름 아닌 그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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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 불친절한 세계의 부조리 속에서, 옳은 길이랑게 있을까? 우리는 어차피 매 순간 선택한다. 삶의 방향을 정하는 키를 스스로가 잡고만 있다면, 이 세계는 여전히 여행할 가치가 있다. 미쳐버릴 수도 있고 신을 저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엔 모든 걸 감내하는 사람에겐 보일 것이다. 누군가는 번개에 맞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알고, 누군가는 엄마였으며, 누군가는 춤을 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서 나 역시도 무언가를 하며 자기만의 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