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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라투>

길 잃은 분노가 썩어 역병을 퍼트릴 때.

by 후기록

노스페라투(2024)


우울이나 분노 같은 감정은, 잘 다룰 수만 있다면 분명 삶의 방향을 이끌고, 어쩌면 본질적인 ‘나’에게 닿게 하는 감정이 아닐까 해요. 다만 그렇지 않았을 때. 그것은 저주가 됩니다. 자신도, 혹 자신의 주변까지 망가트리는.


100년의 시간이 지나 리메이크된 노스페라투는 아주 ‘끔찍하고, 괴롭고, 지저분하며 - 아름다운’ 영화였어요. 마치 엄청난 공을 들여 깎아낸 경이로운 예술작품 - 다만 그것이 ‘신성모독적인 괴물’을 만들어낸 기분이라고 할까요.(이 영화가 현지에선 크리스마스 당일에 개봉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정말 마케팅부는 천벌 받을지도 모르겠어요.) 햇빛이나 달빛, 횃불을 이용한 자연조명과 그림자 연출. 공포를 최대한 가깝게 배치하기 위한 익스트림 클로즈업. ‘고딕’ 호러 다운 예술적이고 디테일한 기물들. 거기에 더해 마치 대결을 하는듯한 팽팽한 연기력들 까지. 참 볼 게 많은 듯했어요. 그래서 그 괴로운 것들을 보면서도 팬보이의 입장에선 참 눈이 즐거웠습니다.


다만 스토리는 논란의 여지가 많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요즘의 시류와는 핀트가 어긋나 있다고 할까요. 다만 이 영화가 표방하는 장르가 ‘오컬트’,‘고딕’,‘호러’이니 만큼 여성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선 한 번쯤은 틀어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는 듯합니다. (지난한 변명이지만 이 사람 ‘더 위치’ 감독이잖아요..) 아무튼 그런 것을 감안한다면 이 영화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록백작과 애나의 관계는 미묘합니다. <드라큘라>에서 원류를 따왔지만 그쪽의 선명한 사랑(혹은 지배)과는 그 결이 참 다른 듯해요. 몰록의 모든 목적이 애나에게 가 있다는 점에서, 저는 한편으로는 올록이 캐릭터성이 애나에게서 비롯된 존재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녀가 올록과 계약을 하게 되는 시점은 아버지의 학대에 의해서였고, 올록과의 관계 이후 그녀는 끊임없는 정신병에 시달렸다는 점에서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올록은 어쩌면 애나의 ’ 분노의 화신‘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올록백작이 다시 그녀를 찾아오는 타이밍도 참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가장 행복한 시기였을 토마스와의 신혼이 끝나는 시점이 토마스가 멀리 떠나야 하는 상황인 점은 참 선연한 인상을 줍니다. 내가 가장 기대고 있던 존재가 멀리 떨어져야 할 때. 사람의 마음은 그럴 때 가장 약해지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마음이란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라서 그녀의 마음은 곧 ’ 분노‘로 차올랐을 터입니다. 다만 그 당시의 여성상에 따라, 처연한, 멀쑥한 숙녀로서 감내해야 했겠지만요.


마음의 병을 가진 애나는 끊임없이 무너져 갑니다. 그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품었던 분노가 저주가 되었기에, 그녀는 거의 모든 순간 ‘정상적인’ 상황이 별로 없습니다. 우울로 표현되는 그녀의 저주는 그래서 의미 심장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우울로 인해 주변이 사위어가는 그림도, 아니 도시전체가 병에 들어가는 메타포도. 꽤나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낫지 않을 것 같은 병에 대한 돌봄 노동은, 세상이 무너져도, 그만큼의 희생이 있어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렇게 올록으로 대치되어 표현된 그녀의 분노는 결국 토마스에게 올록과의 관계를 고백하는 장면에서 이 모든 상황이 ‘그녀의 것’이었다는 선연한 메타포로 다가옵니다. 그녀가 마음이 무너지듯 감당하기 힘든 사실을 쏟아내듯 고백하는 것도, 너무도 갑작스러운 진실을 꺼내놓고도 그걸 바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방에게 ‘원래’ 품고 있었던(자신을 ‘버리고’ 떠난 과거) 분노를 꺼내 죽일 듯이 공격하는 것, 그러면서도 떠날 것을 걱정하고, 더 나아가선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 마저. 이는 정신병적인 증상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쉬이 관찰되는 모습이라는 게 흥미롭습니다. (특히나 그 폭풍 같은 감정선중 눈을 까뒤집고 혀를 깨물려는 듯한 발작증세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충격적일 정도였어요)


이 애나 스스로와 주변을 완전히 부패시키는 분노, 혹은 정신장애의 화신으로 존재하는 올록을 쓰러트리는 방법이 그를 완전히 끌어안아 온전히 스스로 감내하는 것뿐이라는 것도 그래서 맞이한 죽음마저 애나의 것이라는 것 이 이 영화가 참 안타까운 새드엔딩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구원이 없는 서사가, 이 죄가 곧 터질 피주머니처럼 쌓여버린 이 존재에게, 신의 광휘란 이 괴물을 죽이는 것에만 도달해서 씁쓸한 맛이 남습니다. 그나마 토마스의 사랑이 남아서 다행이지만…


이 안타까운 결말마저도 (한편으로는 가혹하다고 느낄 정도의 엔딩이지만) 이 장르이기 때문에 저는 약간이나마 너그럽게 받아들여집니다. 무엇보다 오컬트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좌절과 절망‘을 한껏 맛보는 장르니까요. 소위 ‘비극’이란 것도 나름의 맛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꽤 훌륭한 고딕호러(로맨스 부분은 애매하지만) 걸작이 나온 듯합니다. 하지만 추천은 힘들겠어요. 특히나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요즘에는 쉽게 환영받지 못할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런 요소 분석적인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반죽음 시체 늙은이가 젊은 여자 하나 지배해보려고 하는 몸 비틀기는 이렇게만 보면 너무 불쾌한 스토리잖아요.


다만 이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에겐 필수 시청 각!

그리고 저는 재밌었어요!


판단은 스스로의 몫으로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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