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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맨 시즌 1>

우주적 존재도 성장을 한다고요.

by 후기록

샌드맨


신화를 현대적인 이야기에 접목시키는 일은 여전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소위 모티프라는 개념으로 설정을 차용하되 시류적인 아이디어를 추가해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

어쩌면 모든 작가의 숙명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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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맨은 거대한 이야기였어요. 무엇보다 영원일족이라는 설정을 통해 표현되는 개념들의 이야기였거든요. 그러니깐 '꿈'이라던지 '죽음'이라던지 하는 것들이 의인화된 채 신화와 인간 사이에서 겪는 일들을 담은, 거대한 세계관을 품고 있는 이야기. 꽤 재밌었어요. 저는 잘 짜인 세계관에는 쉽게 마음이 동하곤 하니까요.


원작이 코믹스인 만큼, 캐릭터들의 매력이 참 중요한 드라마겠구나 싶었습니다만, 다만 아쉽게도 주연급의 캐릭터들의 매력은 좀 약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후반부의 주요 캐릭터인 로즈와 전체 이야기의 주인공인 모르페우스 둘 다, 너무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라서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제가 워낙 먼치킨적 존재를 안 좋아하거든요.) 그런 존재들은 뭐라고 할까.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잖아요. 캐릭터의 안전함 같은 게 말이에요.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겠지만 참 아쉽더랍니다.


다만 그에 반해 빌런과 동조인물들의 매력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오히려 이 사이드의 캐릭터들의 매력을 위해 메인의 매력을 깎아냈나 싶을 정도로 말이에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거짓말을 극도로 혐오하게 된 '존.디'의 개똥철학도 흥미로웠으며.(그리고 그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장면은 한화를 통째로 써서 보여주는데, 이게 또 호러장르 문법으로 보면 참 만족스럽게 표현되더랍니다.)

창조주의 손에 어쩌면 신보다 더 위대한 자에게 단검을 꽂아 넣은 '코인트린'의 이야기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며,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의 꿈이 되고픈 악몽의 이야기나, 연쇄살인마들의 은밀한 컨벤션쇼. 등 같은 소재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참 흥미로웠습니다만. 아쉽게도 우리의 주인공은 '데우스 액스 마키나'라서요. 공감되지 않는 우여곡절을 지나 어찌어찌 해결해 버리는 것은 참 아쉽더랍니다.


이런 서브 캐릭터의 매력이 극한으로 드러나는 것은 6화인 '죽지 않는 사내'의 이야기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납니다. 이야기의 전반부의, 꿈의 누이인 '죽음'이 보여주는 죽음에 대한 태도와 해석은 따뜻하고, 부조리하면서도, 초월자적인 면모가 잘 드러났고.

'죽지 않는 사내'또한 소위 영원한 삶의 클리셰에서 벗어나, 몇백 년을 살면서도 권태에 빠지지 않곤 생의 의지로 가득 차 결국 '꿈'의 친구가 되는 이야기는, 신선하면서도 다분히 인간적이어서, 이 11화에 해당하는 시리즈 중에 가장 좋은 에피소드였답니다. 역시 저는 '사람'의 이야기가 좋은 듯합니다. 그리고 작중의 초월적 존재중엔 '죽음'이 가장 좋고요. 단편으로 똑 떼어놔도 괜찮을, 그런 에피소드.


그래서 참 아쉬운 이야기입니다. 소재도 캐릭터들도 전개도 속도감도 비주얼도 모난데 없이 잘 다듬어진 이야기 지만 단 하나 무엇보다 '꿈'은 꽤 굼뜬 존재라서 말입니다. 작중의 이야기 전개를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서사를 가지고는 있어요. 다만 그게 너무 굼뜨다 보니, 그냥 상황과 지위 때문에 그런 성향을 억누르고 있다가, 마음이 동할 때 한번씩 자비를 베풀듯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듯하거든요.

이렇게 보이는 건 성장이나 변화로는 잘 느껴지지 않아서 참 아쉽습니다. 신보다 위대한 존재라는 캐릭터가 부하직원에게 한 말실수에 쩔쩔매는 일이, 저는 좀 조잡해 보인다 느꼈거든요. 약간의 갭모에도 있겠다만, 그거야 애초에 매력이 강한 캐릭터의 이야기 일 테고요.


시즌2가 확정됐다던데, 기존의 매력적인 캐릭터의 서사들이 많이 기대가 됩니다. 드라마 초반부에 나온 '조한나 콘스탄틴'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하수인 까마귀 '메튜'가 사실은 필멸자며 어떻게 꿈의 주민이 된 것인지도 흥미로워요. 게다가 꿈의 주민인 '카인과 아벨'같은 캐릭터도 서늘하면서도 귀여워서 좋았거든요. (참 여러모로 이름 값하는 캐릭터라서요.) 다만 주인공인 모르페우스는, 갈길이 아직도 꽤 멀었으니, 다음엔 좀 성장다운 성장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예정된 주요 빌런이 지옥의 통치자라는 '동급'의 존재이니, 긴장감도 좀 더 잘 조성될 테니까요!) 다른 서브 캐릭터들의 도움을 받아 시리즈가 기대가 되다니, 이런 경우는 참 흔치 않는데 말입니다. 하. '잘 짜인 세계관' 이였네요. 참 어쩔 수가 없네요.



ps.


‘지난한 근속기간 동안 정에게 실망하고 사랑도 실패해 보고 사람에게 수없이 치이다 실망해서 다크서클과 퇴폐미 낭랑하게 채운 규칙과 본분에 충실한 능력 좋은 고위직 공무원’


이 콘셉트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충분히 매력적이고요.


다만 작중에 ‘전과는 다르다’ ‘당신도 변했다’ 이런 말들로 억지로 ‘인간성’을 ‘성장’, 변화‘를 강조하는 문법이 별로였다구요… 차라리 그런 말들이 없었으면 오히려 와닿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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