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시작하는 계절의 주기처럼.
프렌치수프(2023)
나에게 프렌치란 호수의 백조 같은 이미지다. 아름다운 모습 밑에는 생존을 위한 분주한 발짓이 있듯, 아름다운 결과물뒤엔 새벽같이 시작되는 재료손질, 오전과 오후, 때로는 며칠을 들여 소스나 고기, 빵, 야채들을 조리하곤 조합해서 디너에 서빙되는 것.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재료도 부족함 없이 들여야 프랑스어의 퀴진에 해당하는 무언가가 된다. 집착의 산물일지도. 하지만 그 집착을 한 꺼풀 벗겨보면 그 밑엔 꿈이, 열정이, 목표가 있겠지.
영화 <프렌치 수프>는 그런 과정을 현실적인 타협지점에서 최대한 보여주려고 한다. 마치 과정이 중요하다는 듯 말한다고 할까. 오프닝 시퀀스는 거의 한 코스 전체를 적절한 롱테이크를 섞어 메뉴를 만드는 요리사 ‘외제니‘와 보조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테이블의 푸드 코디네이터(실제로 이런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의 도댕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손질되고, 조리되며, 서빙되고, 결국 하나의 음식으로 음미하는 순간을 ‘집요하고, 진득하며, 천천히‘응시하게 만든다. 황홀한 카메라 워크다. 기적 같은 라이팅이고. 최근에 ’ 눈에 예쁜 영화‘가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 영화가 정확하다. 당신이 어떤 준비 과정의 가치를 알고, 지루하지 않게 느낀다면 이 영화가 주는 경험은 재미.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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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반드시 ’ 만드는 사람‘이 있고 ’ 먹는 사람‘이 있어야 완전히 성립하는 행동. 이 영회에서 요리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단순히 한 단어로 표현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정리했다. 때로는 대화, 때로는 추억, 때로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환대, 그리고 프러포즈. 아 어쩌면 ’요리‘는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라. ’과정‘을 중요하게 보여준 것도, 그걸 만드는 사람의 ’ 물 밑 속 발길질‘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지도. 그래 이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과 ‘사랑’인거 아닐까. 도댕은 ‘요리사’로서 의 외제니를 인정하고, 외제니는 한사코 거절한 도댕의 청혼을, ’요리‘와 함께 받은 프러포즈에 마음이 사랑으로 쓰러져버리지. 그리고 그 ’요리 과정’은 아주, 아주 자세히, 그리고 세세히, 가까이서 묘사되고. 프러포즈 코스 요리를 조리하는 ’도댕‘의 심혈의 숨소리와 수십 년을 했을 캐비어를 다루는 그 동작에서 보인 손떨림이, 참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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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화에서의 사랑은, 여름에 시작하는 계절의 주기처럼. 불타는 사랑이 있으면, 안정된 미래에 대한 약속, 얼음장처럼 심장이 차가워지는 사건이 있고, 또 이내 새로운 봄이 시작된다. 흔하지만, 단순히 흔하다고 표현하기엔 너무 포근한, 그리고 부드러운 메타포. ‘나의 요리사’로 끝나는 도댕과 외제니의 대화는, 이 두 사람이 시대를 넘어 20년의 세월 동안 얼마나 서로를 존중하며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지, 깨달음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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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참 길다. 단순히 맛있는 게 아닌, 풍미가 오래 남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