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선을 품고, 폐허 같은 후회를 지나가며
선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인간의 어쩌면 가장 큰 오해 중에 하나는 ‘완벽한 선’이 있다고 믿는 것 일거라고 생각해요. 안타깝게도 인간이란, 결국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는 일은 기적과도 같은(실제로 그를 이룬 이를 ‘성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일이라서,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어쩌면 평생을 들여 ‘선’에 대한 도전을 해야 하는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선’이란 꾸준히 알고, 꾸준히 행하며, 꾸준히 ‘악’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선을 행함이 곧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될 수 없습니다. 이 역시 우리가 ‘인간’이라는 복잡 다양한 존재라서겠어요.) 게다가 이 선악의 구분은 진행형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장으로 치자면 마침표를 무슨 색으로 찍냐 와 같은 기분이 듭니다. 결국 행함에 결과로 판단되는 것이라, 참 야속합니다. 우리는 결과를 모른 채 다음발이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하나만 가지고 또 한 발 내디뎌야 하는 운명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이란, 마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날’과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응당 이루어져야 할 것.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매일매일 무탈함을 반복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소극적인 형태의 ‘선’이고 그것이 쌓여, 또 커져서 커다란 선으로 관성으로 밀려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닿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대체 언제 ’선‘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결국 선을 알아차리는 건 우리가 악에 무너졌을 때 아닐까요. 우리의 행함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신의 이기심에 의해 일어난 후회. 어쩌면 악일 수도, 어쩌면 악과 선이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는 그 상황에서, 우리는 선을 찾게 됩니다.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아무리 튼튼한 기반을 다진 마음일지라도, 누군가(자신을 포함한)의 악함을 속절없이 받아 마셔야 할 때, 우리의 마음이 폐허가 되었을 때. 우리는 선을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요?
위선은 선인가?라는 질문에, 뻗어온 생각.
그렇다면 저는 궁금합니다. 과연 위선이라는 게 존재할까요. 적어도 조금이라도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했던 행동이라면, 저는 그걸 위선이라고 말하지 않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저 ’ 서투른 선‘이라고, 선에 대해 한없이 관대한 모질지 못한 태도만이 제가 가질 수 있는 대답인 듯합니다.
그리고 그 서투른 존재는 필연적으로 결국 후회에 닿게 될 겁니다. 무엇을 잃는지가 명확해지는 시점에서, 우리는 그 폐허에서 혹은 공백에서 삶이란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람은 역시 너무나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불교의 한 가르침 중에 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은, 꽤 살가운 진리인걸요. 다만 우리는 태어남으로써 완성되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탯줄을 잘라냄으로써 하나의 완성된 인간이 되는 게 아닐까. 어쩌면 한 ’ 인간‘이라는 것의 완성의 마지막 마침표는 단절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존을 위한 다정함으로 타인을 그러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선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겹처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온몸을 걸어 서로서로 부딪히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깨어진 별가루 같은 것들이 섞이는 것이 우리의 관계가 된다고,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니 자신을 지키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신을, 외롭게 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각자의 이기심에 의한 충돌 사이에서 당연히 따라올 후회, 혹은 회한이라는 감정에서 <드디어> 무언가를 배우길 바랍니다. 물론, 이 말을 하고 있는 저 역시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