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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시의 물성이 되어간다는 것.

by 후기록

시를 읽는다.


시는 밀도가 높다고 느껴져서, 이리도 얇은 묶음을 읽는데 꼬박 이틀이나 걸렸다. 출근과 퇴근 시간의 햇살이 시집을 비추는 게 참 좋았다. 책 중간에 지는 그림자는 푸른색이란 걸 알게 된 것 도. 그림자 사이를 비집은 햇살이 시어를 비추는 일은 ‘아마 넌 여길 좋아할 거야.’라고 귓속말로 속삭이듯 알려주는 듯하기도 해서 기뻤다. 귓속말은 일부러 작은 소리로, 서로가 숨 닿는 거리를 찾아 만들어진 거겠지. 싫기만 했던 여름의 빛살이 꽤 귀여울 수도 있겠다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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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는 입을 움직이면서 읽었다. 내 목소리가 이렇구나. 나는 말을 할 때 목의 깊은 곳에서 울림이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슬픔’을 반복해서 읽을 땐, 서너 번을 넘겨 갈 땐 목이 메어서 나머지는 그저 입모양이 되어버렸다. 그땐 시집을 내려놓고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머그잔에 물을 가득 채워 마셨다. 슬픔, 눈물, 그런 걸 씻어내는 것도 물인 것 같네.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상온에 보관해서 미지근한 정수물은 걸림 없이 미끄러지듯 몸을 타고 들었다. 차갑지도 않은데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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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좋다’라고 느낀 것들을 갈무리하고, 금방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좋음을 구체화하는 일을 할 요량이다. 그때즈음에 이 시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의 기준을 잡아봤다. 거의 처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또 체감하고 있기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용해 볼 계획을 세워본다. 잘 되면 좋겠다. 처음 하는 일의 서투름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일을 생각한다. ’ 쉽지 않겠지.‘하고 입으로 내뱉어 보곤, 나의 ‘쉽지 않음’은 곧 ‘도전적’인 결심이라는 걸 재인한다. 항상 그랬지 ‘쉽지 않네’라고 말하곤 그걸 지속하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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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종이책을 꺼내면 별종이 되는 기분이 들지만, 이내 주변의 소리가 소강이 되고, 나는 이토록 작은 책에 시선이 쏠려 주변이 보이지 않게 된다. 버스정류장에서 책을 읽을 때면 내가 나무가 된 듯, 미물들이 꼬이곤 한다. 한때는 개미가, 한때는 무당벌레가, 오늘은 새끼 거미가 ‘사랑은 금세 삶 쪽으로 쓰러진다’라고 써진 행을 타고 지나갔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들어 올려, 근처 달맞이꽃에 조심히 내려주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물성이 나무가 되는 걸 지도 몰라. 거친 껍질을 가진, 하지만 사락거리는 잎들을 가진, 책장 넘기는 소리는 잎이 부딪히는 소리 같다. 종이는 아직 나무의 영혼이 남아있는 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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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두어 권의 소설이 밀렸건만, 조급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소리 내어 읽는 일은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듯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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