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리고 인간.
미야자키 하야오 : 자연의 영혼
제 나이대의 분들이라면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특히 일본 문화가 개방되던 시기에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은 아마 각자의 추억 속에 하나쯤은 자리 잡고 있을 거예요.
이 다큐멘터리는 그런 환상과 세계들을 만들어낸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삶과 철학을 조명합니다.
원령공주를 통해 드러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시각,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담긴 현대 사회의 부조리, 붉은 돼지에서 나타나는 반전주의 등, 다양한 주제를 담아낸 그의 작품 세계에는 놀라울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죠—찬사의 의미로.
하지만 그의 삶과 작품이 가진 깊이와는 별개로, 이 다큐멘터리의 구성은 다소 산만합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꽤, 아니, 상당히 아쉬운 작품으로 느껴졌어요.
이 다큐멘터리는 미야자키의 삶을 시간순으로 따라가며 그가 어릴 적 <백사전>을 보고 애니메이터의 꿈을 꾸게 된 순간부터, 마지막 작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어요.
그런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연과 인간—혹은 더 나아가 ‘총체로서의 세계와 인간의 관계’,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대의 부조리,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이처럼 큰 주제들을 모두 다루려는 욕심이 느껴졌달까요.
그리고 이런 주제들이 마치 시간 순서대로 미야자키의 삶 속에 나타났던 것처럼 편집된 점도 아쉬웠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결코 선형적으로 주제를 발전시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자연을 다룬 원령공주에서도 단지 자연만이 아니라 반전의 문제, 인간의 발전이 자연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문제 등 다양한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요. 센과 치히로, 그리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러한 복잡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그의 삶을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나열한 구성은 오히려 전달력을 떨어뜨렸습니다. 주제가 분산되었고, 각 이야기의 깊이에도 도달하지 못했어요. 하나의 주제가 깊어지려 하면 곧바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니까요.
결과적으로, 편집의 아쉬움이 큰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다만, ‘총체로서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시도는 인상적이었어요.
인간은 언제나 자연을 ‘이용’함으로써 발전을 추구해 왔고, 지금까지는 그 방식이 유효했던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그런 태도는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연을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우리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흙을 응집시키는 곰팡이, 우리 안의 장내 미생물까지. 우리가 존재하기 위한 최소 단위를 ‘나’라고 정의할 때, 세상의 어떤 구성요소도 빠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곧 ‘자연’이라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이 기후위기 시대에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는 어쩌면 ‘무언가 더 하기’가 아니라, ‘무언가 덜 하기’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요.
이 지점에서 저는 ‘인간’을 중심에 놓기보다, 더 큰 세계를 상상합니다. 원령공주처럼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가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상상. 센과 치히로에서 강 그 자체로서의 신이 목욕을 하고 기뻐하는 장면처럼. 이제는 인간이 세계의 ‘영장’의 자리를 잠시 비켜줘야 할 때가 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미야자키의 작품 세계에 익숙하거나, 생태적 사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겐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그 지점에 도달하기엔 정보의 깊이가 다소 얕습니다.
특히 미야자키 감독의 여러 논란들에 대해선 의도적으로 피하려는 듯한 태도가 느껴졌고, 이는 단순히 깊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깊어지지 않으려는 태도로 받아들여져 더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인 아쉬움을 덧붙이자면, 미야자키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여성 서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점도 안타까웠습니다.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그래도—그럼에도 불구하고—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다시 한번 그의 애니메이션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특히나 갑자기 마무리가 급작스럽게 이루어져 더욱이나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