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해피엔드>

경계선에 선 외줄의 진동.

by 후기록

해피엔드. (스포일러 주의)


청소년기를 돌아보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유연함’이 때로는 유약함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소위 말하는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는 친구들. 점점 모이는 일이 줄어들고, 더 나아가선 완전히 멀어지기도 한 그 ‘어른이 되어가는’ 친구들. 난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데.

아직 굳어서 내 형태를 정의하고 싶지 않은데, 하면서 나는 계속 뒤처진다. 가라앉는다.


-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어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하지만 《해피엔드》가 보여주는 근미래의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을 더 옥죄는 방향으로 변화한 듯합니다. 저항이 약화된 시대. 인간에게 시스템에 대한 복종이 당연시되는 시대. 기술의 발전은 안타깝게도 사람들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쪽으로만 나아간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렇듯 어떤 것도 해소되지 않은 채 억누르기만 하는, 언제 터질지 모를 사회 속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창작 음악 동아리. 이 경직된 사회 속에서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해방구를 찾는 학생들. 유타와 코우, 밍과 아타, 그리고 톰. 이들의 이야기가 얽히고 뻗어나가며, 영화는 한 폭의 직조된 천처럼 완성됩니다.


청소년의 감성은 단순히 ‘사춘기’라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을 만큼 복잡합니다. 특히 성인의 나이가 20세 전후로 정해졌다고 볼 때, 그 시기의 저도 참 복잡했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고 싶기도 하고, 아이이고 싶기도 하고. 어른이라고 하기엔 자격이 미달인 것 같고, 아이로 남기엔 곧 자격이 박탈될 것 같고.

경계선에 서 있다는 것. 그 선 위에 위태롭게 서서 어느 쪽으로든 넘어갈 수 있다는 감각. 참 어려운 고민이었죠.


이 불안정한 존재들에게 세상의 감시와 억압, 특정 정체성에 대한 차별이 더해지면—어떤 것은 허용되고 어떤 것은 허용되지 않는 기준을 누군가가 정한다는 사실은 더욱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꿈을 꾸고, 누군가는 벗어나며,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저항하고, 또 누군가는 포기합니다.

이 아이들의 삶의 조각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 선생님까지. 모두에게 공감이 갑니다.

아마 제가 어느덧 한참 나이를 먹어 이 이야기를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일까요. 저 역시 동아리 친구들과 그 부모님, 선생님 사이의 어디쯤, 그 경계선 위에 여전히 서 있는 느낌이에요.


카메라 워크와 미장센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합니다. 영화를 보시면 ‘경계’를 만들어내는 카메라 움직임이 참 좋다고 느끼실 거예요. 선과 면, 더 나아가선 보이지 않는 ‘절단’ 같은 걸 아주 정교하게 포착해 냅니다. 잔잔해 보이고 이전부터 많이 다뤄진 듯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이 너무 신선해서 오히려 새롭게 느껴졌어요.

그 지점에서 이 신예 감독의 역량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엔딩이 아주 훌륭합니다. 영화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전달을, 정말 오랜만에 본 것 같아요.


선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걷는 유타와 코우. 영화 초반의 장난기 어린 모습은 사라지고, 각자의 ‘미래’를 위해 곧 갈라서야 하는 상황이 압축적으로 표현됩니다. 초반 장면에서는 유타가 코우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엔딩에서는 두 사람이 묵묵히 걷다 마지막에야 코우가 그 ‘선’ 위에, 즉 경계선 위에 서서 이별 인사를 건넵니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유타가 코우에게 마지막 ‘주먹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영화는 멈춰버립니다.

아마도 두 사람 사이의 ‘추억’이 남는다면, 그리고 그들을 영원히 이어 줄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순간’ 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영화는 그 찰나를 길게 늘여 보여줍니다. 마치 그들에게 감정이입한 관객인 우리가,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는 걸 알아채기라도 한 듯.

그들이 사랑했던,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어준 ‘음악’이 폭발보다도 더 큰 소리로 울려 퍼지며 말입니다.

엄청난 전율. 놀랍고, 과감하며, 적확한 연출입니다.


<해피엔드>는 많은 질문을 품은 영화입니다. 각각의 정체성을 가진 개별 소수자들이 처한 배척의 현실, 감시가 더 안전하다고 믿는 이들의 논리, 지진으로 상징되는 세계의 불안정성과 부조리함까지. 이 모든 주제가 얽히고설켜 감상자로 하여금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중심 플롯은 흐트러지지 않고, 영화는 청춘의 사랑, 불안과 설렘을 고르게 담아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감정을 ‘말’이 아니라 ‘보여줌’으로 표현한 감독의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납니다. 정말, 영화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았을 방식으로요.


마치 마지막 장면처럼—그 경계의 한순간을 함께 걸어준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아름답고 잊히지 않을 해피엔드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