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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극: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by 후기록


떠오르는 스포트라이트, 현대무용과 함께 시작되는 애절한 목소리의 창. 서양악기들을 차용한 엠비언트에 올려진 우리의 소리가 자연스레 섞이는 것을 들으며 나는 이 애절한 무대에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미니멀한 연출과 대비되면서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가득 차는 무대. [레전드 춘향전] 중 에필로그 ‘민들레’의 무대에서 어쩌면 이 것이 현시대의 [여성국극]의 모습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성국극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안에 오래된 먼지와 쓸쓸한 조명을 떠올렸어요.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강렬하고 눈부신 무대였을 것이지만, 내겐 낯설고 조용한 이야기. 어쩌면 고리타분한 이야기와 연출, 판소리 같은 고루한 매력의 오래된 것들. 하지만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를 보고 나선. 이 장르를 떠올릴 때마다 생기는 그 묘한 감정, 그건 어쩌면 고루함과 슬픔이 아니라, 어떤 자부심, 어떤 집착, 어떤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194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까지,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의 전성기를 누렸던 소위 ‘K-뮤지컬’이라는 별명을 지닌 여성 국극. 전쟁 이후의 상흔, 여전히 짙은 가부장의 그림자, 이런 어려움들 속에서 여성들은 스스로의 이름으로 무대를 만들어 냅니다. 남장을 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그녀들의 극단은. 남성의 시선을 벗어나, 여성의 몸으로 남성의 정서를 연기하며, 그들의 목소리로 다시 무대를 구성해 냅니다. 그것은 연극이라기보다 하나의 움직임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유수연 감독의 이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 무대의 숨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조망합니다. 1세대, 작중나이 93세의 조영숙 선생님과, 그녀의 제자들인 3세대 박수빈, 황지영 예인들을 주축으로 삼은 이야기. 모두가 등을 돌린 예술을 여전히 붙잡고 그 끊어질듯한 계보를 이어보고자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모여 어떤 꿈으로 표현되는 [레전드 춘향전]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후원금을 모으고, 홍보지를 붙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것은 그저 공연을 준비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한 존재를 다시 꺼내 다시 살려내는 일을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완성된 [레전드 춘향전]은, 단순히 존재 자체가 옅어진 한 예술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전통과 현대 사이에 선 예술가의 삶의 형태’라는 것을 아주 뜨겁고, 열정적으로 담아냅니다.


“여성국극이 나 닮아서.”

박수빈 배우가 조심스럽게 꺼낸 이 말은, 아마도 이 영화 전체의 마음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여성국극은 한 예술이 아니라, 삶의 방식, 아니 존재의 의미일지도요. 그래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예술이 다시 피어나는 지금에서 저는 그것은 단지 복원이 아니라 ‘살아내기’에 가깝다는 걸 느낍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한’ 이 무언가를 만드는 일. 그 조용한 움직임을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의 문화들을 생각하면, 분명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에 처연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아름답고 멋진 문화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나. 하는 생각 말이에요. 나름 대중적인 ‘판소리’나 ‘전통무용’ 같은 것 마저 대중들과 거리가 멀어지다 못해 ‘어어.. 그런 게 있지 그렇지…’ 정도로 기억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여성국극의 이 마주했을 어려움들을 떠올립니다. 더 크고 빠르고 대중적인 것들에 밀리고, 정치적, 사회적인 시선에 의해 ‘의도적’으로 묵살되어 버린 정황들로 인해 사람들의 기억에서 천천히 지워졌던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보며 가슴이 찌르르하고 울린 순간들은, 바로 그 지워진 자리를 다시 살아보려는 이들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계속해서 무대를 올리는 사람들의 마음들. 그 마음에 약간이나마 공명하게 되는 듯했어요. 어쩌면 이 시대는 너무 쉽게 무언가를 지워내는지도 모릅니다. 너무 빠르게 평가하고, 너무 쉽게 외면하며, 너무 쉽게 잊어버릴지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국극은 그런 선택의 바깥에 있습니다. 이 장르를 다시 꺼내어 보는 건, 무엇이 잊혔고, 왜 잊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엇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를 묻는 일이 됩니다. 누가 보지 않아도 무대는 오르고, 누가 듣지 않아도 노래는 계속된다는 것. 사랑하는 마음이란 늘 그런 것 아니었을까. 아무도 몰라 주더라도, 혼자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을 말입니다.


어떤 사라져 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이번 글의 제목으로 삼으면서 나는 고요히, 그 말의 무게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이 마음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피어나려는 중이라고.


저는 최근 ‘정년이’라는 만화와 드라마 시리즈의 화제성을 떠올립니다. 또 이 다큐멘터리의 존재 자체를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 이 ‘여성국극’과 닮은 ‘존재함이 당연한 존재들’의 억눌린 마음들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조금 운명적인 흐름 속에서 내가 떠올리는 존재들에게도 꽤 뜨거운 바람이 들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어떤 격동적인 바람을 타고, 이 존재함이 당연한 것들에게 밝은 조명이 켜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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