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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볼드 뷰티풀>

시네마틱 사이코드라마.

by 후기록


‘모두가 연기를 하고 살아가면, 우린 언제 스스로를 돌아볼까?’


빅 볼드 뷰티풀의 원제는 ‘빅 볼드 뷰티풀 저니’로, 이를 해석하자면 ‘위대하고 용감하며 아름다운 여정’이라는 의미가 돼. 대단한 미사여구가 세 개나 붙은 이 여정은 과연 무엇이길래 이렇게 추앙받는 걸까. 그 의문점을 일단 뒤로한 채 영화는 시작돼.


영화는 조금 우울해 보이는 ‘데이비드’와 과거의 상처가 있어 보이는 ‘사라’가 만나 수상한 ‘자동차 렌탈 업체’를 통해 차를 빌리고, 그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을 따라 떠나는 ‘과거 탐색의 여정’을 그려내. 평원이나 간판에 덩그러니 놓인 문을 열고, 또 그 문을 열어 깊숙이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과거란 것이 으레 그렇듯 아름답고 슬프며, 때로는 트라우마적인 이미지로 형성되곤 해. 그런 서로의 과거를 바라보고 ‘이해’하게 되면서 가까워지는 두 남녀의 모습은 꽤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서 잠깐, 심리치료의 기본은 상담이지? 여기서 변주되어 집단 상담, 동반 상담, 미술 치료 등 다양한 갈래로 나뉘게 되고 말이야. 그중 한 방법이 바로 ‘말로만 하는 상담이 아니라 무대처럼 마련된 공간에서 직접 상황을 재현하고 역할을 바꿔가며 연기해 보는 치료’, 즉 심리극이란 게 있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말이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의 모든 구성은 이 ‘심리극’의 영화적 재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우리는 과거를 모두 소화해 낸 것처럼 살지만,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이 돌아가게 되는 삶의 체크포인트들이 있다고 생각해. 그것이 스트레스 상황으로 드러날 때 우리는 그것을 외상, 즉 트라우마라고 표현하지. 하지만 그런 어려움에 대해 우리는 흔히 과거는 과거에 있어서 ‘바꿀 수 없다’라고 말하곤 해. 그리고 어떤 면에선 정말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지. 하지만 네가 과거로 다시 돌아가서, 혹여 내가 시도해보지 못했던걸 다시 하거나, 아니면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있다면? 그때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지금에서야 할 수 있다면? 이 ‘거대하고 용감하고 아름다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까?


각 과거로 들어가는 시퀀스는 문으로 어떤 시점인지를 파악하고(준비) 문을 열어 구성된 상황에 들어가서(몰입) 어쩌면 더 나았을 무언가를 행동하고(실현) 실현 이후 사로의 감상을 나누는(공유) 심리극의 구성 요소를 따라가.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아버지가 되어보거나(역할 교대), 상황상 어린 나이지만 현실의 내가 개입되어 엄마와 대화를 하는(보조자 활용) 장면들을 통해 적절한 치료적 요소들을 구현하지. 하지만 과거를 바라보는 일은 너무 괴롭고 힘든 일이라 때때로 현실(암전 된 텅 빈 무대)로 돌아오기도 해. 이러한 장면들은 이 두 남녀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고 회복하는 이미지는 너무도 선연한 심리극의 메타포야. 그리고 이 반복되는 치료 세션을 통해 사라와 데이비드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자신이 ‘동떨어진 존재’가 아닌 ‘연결된 존재’ 임을 자각하게 돼.


이런 구성을 만든 이유가 뭘까? 심리극적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는 단순한 로드무비나 치유물로 읽히지 않아. 오히려 ‘연기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다시 자기 자신을 회수하는가’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데이비드와 사라는 각자의 과거를 재현하고, 그 장면 속에서 다시 한번 말하고, 다시 한번 듣고, 다시 한번 숨을 쉬어보면서 그동안 멈춰 있던 시간이 밀어내기만 했던 ‘사랑’이 비로소 흐르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말이야.


코고나다는 이 과정을 특유의 연출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 왔던 ‘나 자신의 조각들’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해. 그래서 결국 이 여정은 ‘거대하고 용감하고 아름다운’ 무엇이 되어버려. 거대함은 과거를 건드리는 일이 가진 무게에서, 용감함은 그 앞에 다시 서는 태도에서, 아름다움은 누군가와 연결되는 순간에서 비롯되지. 그렇게 영화는 제목의 의미로 다시 되돌아온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과장된 미사여구라기보다 오히려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용기에서 비롯된 말처럼 느껴져. 내 과거를, 내 상처를, 그리고 그 상처를 지나온 나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용감하며,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우리를 붙잡고 있는 과거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려봐. 한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너무 빨리 지나치게 둔 순간들 말이야. 어쩌면 그런 과거의 장면들은 엔딩을 기다리는 ‘미완성의 대사’ 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 마무리를 위한 당신의 여정을 응원하는 영화가 아닐까? 당신이 이 영화를 보고 그런 안식을 찾는다면, 정말 기쁜 일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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