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은 작가와 에디터가 함께 하는 출산
브런치스토리에 그동안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글들을 묶어 책 두 권을 만들었다. 정리된 글들을 출판사에 던지고 나니 조금 심심해졌다. 그래도 틈틈이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교정을 보고 책 만들기에 참견도 하는 오지랖을 떨기도 했다.
해보신 분들은 잘 안다. 글쓰기도 그렇지만 출간도 보통의 인내심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제안서를 보내놓고 노심초사 답을 기다리는 세월도 거의 곰이 인간으로 환생할 지경이다.
몇십 번 몇백 번 무시되고 거절되기를 거듭하다 출간이 성사되어도 그때부터 기다림의 시작이다. 운이 좋아서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글을 먼저 발견한 '눈 밝은' 출판사 덕분에 1단계는 건너뛰었다. 그때부터 글을 내려받고 교정을 다시 보고 순서를 바꾸고 더하기 빼기의 연속. 목차구성을 다시 하고 글들을 재조립해서 출판사 에디터에게 넘겨놓곤 또다시 기다림.
발간된 책을 서점에서 만나는 기간을 한두 달 정도 예상한 나의 기대는 터무니없었다. 초교, 재교, 삼교 요청이 거의 보름 간격으로 왔다. 교정은 진심과 혼신을 다해, 그러면서도 행복한 마음으로 했다. 드디어 4교까지 보고도 또 하나의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데군데 삽입한 사진과 일러스트의 출처표시를 정확히 해달라는 요청이다. 내가 직접 찍은 사진도 있고 구글이나 블로그 인터넷 카페, 브랜드 홈페이지 등에서 검색으로 찾아낸 것들도 있었다. 나름대로 출처표시를 한다고 했지만 저작권 침해가 걱정된다는 얘기다.
난감했다. 더 이상 어떻게 원작자를 밝히란 거야? 또 한 번의 인내심 테스트. 또 일주일 이상을 찾아내고 허락받고 하는데 시간을 썼다. 사진은 내가 직접 찍은 것이었고 그림은 사후 70년이 지난 화가들의 작품이어서 문제될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료들은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를 꼼꼼이 검색해서 출처를 명확히 밝혔다.
내 글들에 소환된 아티스트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림이나 음악, 사진, 조형 등의 예술작품에 담긴 원작자의 열정과 창작의 고통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예술가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된 건 대부분 책과 자료 덕분이었다. 클림트의 고독, 쉴레의 불안, 뭉크의 절규는 그저 작품만으로는 다 느낄 수 없는 무게였다. 『클림트: 황금의 화가』(수지 호지), 『에곤 쉴레: 욕망과 불안의 화가』(장 피에르 루아젤), 『뭉크, 절규』(스테펜 울리엘렌) 같은 책을 읽으며 그들의 내면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많은 예술가들은 타고난 재능으로 불후의 명성을 얻었지만, 그들의 삶 이면에는 건강 문제나 불운한 환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예술적 열정과 개인적 고난이 어떻게 맞물렸는지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극한의 어려움을 예술로 승화시켜 세상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는 점이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상징주의 화가로 화려한 금색 장식과 몽환적인 화풍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심오한 성적 주제를 다루며, 여성의 관능적인 매력을 강조하고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외로움과 고독의 연속이었다. 그는 삶의 마지막까지 혼자였으며, 인간관계에서의 깊은 연결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클림트의 이러한 고독감은 그의 작품에 강한 감정적 깊이를 부여했고, 예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에곤 쉴레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로, 독창적인 스타일과 강렬한 감정 표현으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천재성과 불행이 얽혀 있어 예술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쉴레는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부모와의 관계는 복잡했고, 아버지의 조기 사망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와의 갈등을 겪기도 했다.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는 전쟁과 질병으로 더욱 비참해졌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불행하게도 28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에드바르드 뭉크는 대표작 절규(The Scream)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겪은 내적 불안과 외로움을 생생하게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어린 시절 부모와 형제의 죽음을 겪으며 고통 속에 자랐던 뭉크는 불안, 죽음, 그리고 사랑과 상실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그는 평생 심리적 혼란과 싸우며 알코올 중독과 정신 질환에 시달렸다. 자신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시각화함으로써 뭉크는 표현주의의 선구자가 되었지만, 그 과정은 그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니콜로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전설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건강 상태는 매우 나빴다. 마르판 증후군으로 알려진 유전 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 질병 덕분에 남들보다 더 유연한 손가락을 가졌고, 이것이 그의 독특한 연주 스타일을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파가니니의 연주는 청중들에게 마치 악마와 같은 천재성을 보여주었지만, 그의 삶은 고독하고 고통스러웠다. (참고: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피터 로젠)
김광석은 한국 가요계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였지만, 그의 삶은 깊은 외로움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노래를 통해 사회적 문제와 개인의 감정을 표현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참고: 『김광석 평전』, 김태훈)
빈센트 반 고흐는 말할 것도 없이 고통받는 천재 예술가의 전형이다. 오늘날에는 미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지만, 생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생애 동안 지속적인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렸으며, 결국 자해 사건으로 잘 알려진 "귀를 자른" 일화는 그가 처한 정신적 혼란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37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는, 죽음 이후에야 작품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다. (참고: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들』 , 빈센트 반 고흐 서간집)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독창적이고 강렬한 작품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극심한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난 속에서도 예술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프리다는 18세 때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평생 지속된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된다. 척추와 골반이 부러지고, 여러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으며, 그로 인해 침대에 누워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고, 자신의 고통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독창적인 화풍을 발전시켰다. 그녀의 작품은 여성의 강인함과 자아를 표현하며,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참고: 『프리다 칼로: 고통과 열정의 화가』, 헤이든 헤레라)
장 미셸 바스키아는 1980년대 뉴욕 예술계를 뒤흔든 천재적인 스트리트 아티스트였다. 그는 흑인 청년으로서의 정체성과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 삼아 독창적인 회화 스타일을 구축했고, 금세 주목받는 예술가로 성장했다. 그러나 빠르게 성공을 거둔 만큼, 이른 나이에 마약 중독에 빠졌고 27세에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폭발적인 창의력과 내적 혼란은 그를 파멸로 이끌었지만,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참고: 『바스키아: 거리에서 별이 된 예술가』, 피에르 미셸)
이처럼 예술가들의 고난은 단순한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예술의 원천이자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내면의 갈등, 외부의 억압, 그리고 불안정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창작을 이어갔다. 예술은 단순한 창작 이상의 것이다. 종종 인간의 가장 깊은 감성을 이끌어 낸다. 클림트, 쉴레, 뭉크, 파가니니, 김광석, 고흐, 칼로, 바스키아 같은 예술가들은 그들의 창의성과 동시에 깊은 불행을 경험했다.
내 책에는 이들의 작품들이 다루어지고 있고, 그것들이 사진이나 그림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들의 작품에 담긴 원작의 아우라는 단순히 저작권이라는 개념으로 존중되고 보호되기에는 너무 값지다. 한 폭의 그림, 한 곡의 음악, 하나의 조각작품이 완성되기까지에 바쳐진 예술가들의 좌절과 고통을 들여다보면 저작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작품 하나하나의 저작권을 지켜내는 출판사 에디터의 집요함에 짜증을 낸 게 부끄럽다.
그러고 나서도 몇 가지는 재확인을 요청하는 에디터. 극심한 세심함에 질리기도 했지만 안심이 푹 된다. 맞춤법 교정, 오탈자 교정, 문장 교정, 출처 교정... 이 모든 것들이 원작의 진가를 조금도 훼손하지 않겠다는 고집 아닐까? 어쩌면 나의 글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온전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했지만 결국은 위대했던 예술가들의 작품과 저작권이 뿜어내는 불멸의 광채처럼!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제대로 만든 완벽한 책이 나오기까지의 산고라 생각하니 든든하고 뿌듯해진다. 하지만 더 기다려야 한다. 출간은 출산에 다름 아니니까! 마침내 내 책의 온전한 '저작권'이 탄생하는 순간, 출판사와 함께 축배를 들고 싶다.
* 이 글을 쓰고 나서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 또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