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와 광고를 통해 시대정신을 읽다
광고는 단순히 제품을 알리는 수단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와 시대를 비추는 또 하나의 언어일까? 광고와 브랜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은 신간 『광고에 말 걸기』(이현우 지음, 북코리아)가 출간됐다.
카피라이터, 광고 전공 교수,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광고를 ‘말 걸기’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제품이 아니라 사람과 시대를 향해 말을 거는 광고. 그 질문과 응답의 풍경을 책 한 권에 담았다.
『광고에 말 걸기』는 총 3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에서 특정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을 분석하며 독창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저자는 보드카, 운동화, 옷, 자동차, 심지어 정치광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광고 텍스트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면서, 광고가 어떻게 사회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 여성복 브랜드 쿠카이(KOOKAÏ)는 이 책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사례 중 하나다. “여자는 여전히 약자인가?”라는 직접적인 문장을 광고로 제시한 쿠카이는, 단순한 패션 광고의 범주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시위’로 읽힌다. 저자는 이 광고를 두고 “고정된 성역할과 젠더 불균형, 남성 중심 권력구조에 대항하는 아티스트적 감수성과 사회적 분노의 충돌”이라 표현한다.
이외에도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광고 캠페인이 소개된다.
• 앱솔루트 보드카: 25년 넘게 이어진 일관된 병 모양 이미지 시리즈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축적한 사례. “말 대신 이미지를 쌓아 올린 전설”로 묘사된다. 앱솔투트 보드카 광고는 상징적 은유로 그 존재를 광고사에 우뚝 세웠지만 또 다른 미덕이 있다. 그것은 철저히 제품을 스타로 만드는 아트워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도시, 풍물, 사람, 문화재, 패션 등이 작품의 표현오브제로 등장했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제품의 드라마가 숨 쉬고 있다.
• 나이키 Just Do It 캠페인: 스포츠 스타들의 신체적 장애, 불안과 의심을 응원으로 전환시키는 광고 문구로, 시대의 무기력함을 정면으로 돌파한 대표적 사례. 패럴림픽 광고 이야기에 나이키를 뺄 수는 없다. 나이키는 단순한 상표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스포츠의 모든 것이다. 사람들의 꿈과 비전, 희망과 동경, 열망과 존경 등이 이 이름 안에 다 담겨 있다. ‘Just Do It’은 슬로건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인들의 생활수칙이요 좌우명이며 복음이요 교리가 되어 버렸다.
• 소니 브랜드 캠페인 : 소니는 한때 가전제품, 오디오, 게임기, 전자기기를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워크맨, 트리니트론 TV,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제품은 소니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고, 단순히 물건을 파는 회사를 넘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상징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게 했다. 2000년대 이후 소니의 전성기는 점점 끝나갔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디스플레이 기술에서 앞서며 소니의 TV 시장을 잠식했고,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팟으로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을 재정의하면서 소니의 휴대용 기기 시장을 빼앗았다. 구글과 MS는 클라우드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산업을 재편하며 하드웨어에 의존하던 소니를 시대에 뒤처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소니는 몇몇 분야에서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세계 게임기 시장의 선두를 유지하고 있고, 스마트폰 카메라용 이미지 센서 사업에서는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와 음악 사업도 꾸준히 성장 중이다.
• 보건복지부 노담 광고캠페인: 2020년대에 들어와 등장한 “노담!” 캠페인은 기존의 금연 캠페인과 완전히 다른 톤과 방식을 제시했다. 이 캠페인은 흡연을 단순히 건강에 해로운 행동으로 규정하는 대신, 그것을 유행에서 뒤처진 것으로 묘사하며 흡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의했다.
• 디젤 광고 캠페인: 디젤(Diesel)은 1985년 이태리의 렌조 로쏘(Renzo Rosso)가 발족시킨 작업복·청바지 브랜드이다. 디젤은 광고로 이야기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브랜드다. 도발적이고 날카로운 사회 비판, 경계를 허무는 상상력은 이 브랜드의 핵심 병기다. 현실에 처절한 똥침을 날리는 풍자와 조롱, 아이러니와 패러독스가 난무하는 이야기들. 이 발칙한 광고들은 늘 새로운 세대의 관심을 끌어왔다.
*책 속의 주요 글
폴크스바겐 광고 캠페인
자동차의 역사에서 폴크스바겐(Volkswagen) 만큼 강력한 브랜드가 또 있었던가? 그만큼 폴크스바겐은 위대한 광고 캠페인이었다. 톤, 스타일, 위트, 당돌함, 그 모든 면에서 말이다. 이 광고는 다른 어떤 광고보다도 많이 인용되었다. 때로는 모방되거나 표절되고, 복제되거나 오용되기도 했다.
이 광고를 말하면서 우리는 빌 번바크(Bill Bernbach)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광고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철학을 지녔던 번바크와 그의 동료들은 네거티브와 유머를 적절히 믹스하여 새로운 광고 스타일을 창조해 나갔다. 딱딱한 사실을 전달하는 대신 이 자동차의 한계와 약점을 활용해서 이를 오히려 강점으로 바꾸어 놓았다.
“새 차란 이래야 한다고 흔히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탈출하라. 겉모양은 변하지 않지만 내부는 늘 새로워지고 있다는 걸 알리자. 폴크스바겐은 색다르다. 그 생산과정까지 색다른 광고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이 설정한 크리에이티브 콘셉트였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캠페인을 만들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카피라이터, 한 사람의 아트디렉터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일관된 스타일, 일관된 콘셉트를 유지하는 광고. 이 작품들은 제한된 예산과 무제한의 비전, 제품에 대한 놀라운 충성심으로 가득찬 광고주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박카스 브랜드 광고 캠페인
제록스, 나일론, 미원, 크레파스, 포클레인, 워크맨, 박카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같은 카테고리의 브랜드를 대표하는 보통명사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박카스는 피로회복제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박카스는 신화(神話)에서 유래한 이름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인화(人話)에 가깝다. 박카스에는 강신호라고 하는 한 인간의 집념과 애환, 영욕이 고스란히 서려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했고 동아제약의 회장으로 있는 강신호가 이 상품에다 박카스라는 이름을 부여한 때부터 신화의 역사는 시작된다. 1960년 5월이었다. 보릿고개가 있었고 미국 구호물자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구호물품 중에서 비타민은 몸을 튼튼하게 해주는 강장제로 여겨져서 최고의 인기품목이었다. 비타민과 미네랄에 강간제(强肝劑)를 배합한 종합강간영양제 박카스는 술꾼을 지켜주고 풍년을 약속하는 바커스 신에 다름 아니었다.
캘빈 클라인: 브랜드를 위한 의도적 말썽거리
‘시끄럽지 않으면 관심을 끌 수 없다’는 명제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캘빈클라인은 지속적으로 ‘청바지를 위한 말썽거리’를 만들어 나갔다. 한 청바지 캠페인은 미성년 포르노(kiddie porno)로 불릴 만큼 노골적이고 민망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흰 속옷이 드러나 보이도록 다리를 벌리고 있는 소녀의 모습, 짧은 청바지 사이로 흰 삼각 브리프를 내비치는 소년의 포즈, 가슴의 라인을 은근히 내비치는 도발적인 눈매의 아가씨. 특히 타임 스퀘어에 내걸린 옥외광고물은 어린이 포르노라는 이유로 시민단체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캘빈클라인의 선정적인 언더웨어 광고 시리즈는 미국 문화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캘빈 클라인의 딸인 마시 클라인의 말은 그것을 방증하는 일화로 기억되고 있다. “뭐 이런 웃기는 경우가 다 있어? 남자와 잘 때마다 그 녀석의 팬티에 새겨진 아빠의 이름을 봐야 하다니.”
책은 이렇듯 ‘말을 거는 광고’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당신에게 브랜드란 무엇인가?”
저자 이현우는 광고는 더 이상 소비만을 촉진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대의 감정과 의제를 담아내는 매개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팬데믹, 기후위기, 젠더 이슈, 세대 갈등 등 사회가 격변하는 지금, 광고 역시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광고에 말 걸기』는 실무자뿐 아니라 브랜드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 사회와 문화를 광고의 시선으로 읽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 언론 매체에 소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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