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와회 봄 정례 라운딩' 참여후기
봄과 가을, 해마다 두 번씩 우물 안이 들썩인다. 개굴개굴, 와글와글...
이보다 더 신명 나고 흥겨운 잔치가 또 있을까?
‘井蛙會’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들의 놀이터다.
청개구리, 참개구리, 논개구리, 산개구리, 꾀꼬리가 되려다 만 개구리, 두꺼비, 황소 개구리까지…
세상 맛 다 본 개구리들이 한 우물에 모여 인생의 새로운 맛을 즐긴다.
춘천에 자리한 라비에벨(La vie est belle) CC는 장년 개구리들의 우물이자 운동장, 놀이터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이 프랑스어 문구는 광고쟁이였던 내게도 각별한 울림이 있다.
랑콤 향수의 카피 “인생을 아름답게!”가 떠오르기도 하고, 로베르토 베니니의 명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감동이 겹쳐지기도 한다.
50년 전, ‘등 푸른 고등어’였던 머슴아들이
이제는 뱃살 통통한 개구리가 되어, 춘천의 잔디밭 우물에서 공놀이에 푹 빠져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라며 배우던 시절, 맹꽁이가 되지 않으려 다들 그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지금은 두꺼비도 되고 황소개구리도 되어, 대한민국 곳곳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맹꽁 맹꽁 하고 있지만...
그런 50년 지기들이 둘러앉아 노는 이 우물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청량한 오아시스다.
이 우물을 벗어나 연못으로 공을 던지거나, 수풀 속으로 날리면 어김없이 벌타를 받는다. 한번 집 나간 공들은 이번 생에선 환생이 글렀다.
나 역시 한때는 남들 잘 가지 않는 옆길로 새어,
광고판이라는 우물에 빠져 반평생을 보냈다.
살기 바빠, 이 우물 속 개구리들의 신명 나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살아왔다.
밥벌이가 끝날 무렵, 소문을 듣고 우연히 이 우물에 뛰어들었다. 이제 겨우 두 해 째지만, 한번 맛본 이 우물 맛은 도저히 헤어날 수가 없다.
우물의 시작은 사실 잘 모른다.
들리는 말로는 “우물을 파자!”며 목청을 높이고, 대장개구리를 맡은 이가 바로 상윤이었다 한다.
현 총무인 홍목 개구리는 지금도 틈날 때마다 초대 회장의 존재감을 부각하며 늘 인사말을 시킨다. 그 모습을 보면, 상윤이 이 우물의 태동에 핵심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정작 상윤은 자화자찬도, 과거 얘기도 하지 않는다. “쑥스럽다. 건강하게 오래 운동하자”는 짧은 덕담이 전부다.
누가 봐도 회장인데, 늘 자신을 ‘총무’라 부르는 홍목은 라운딩이 끝나고 식사 자리에서 그날의 빛나는 개구리들을 소개한다.
파3 홀에서 병식이 아이언으로 친 공이 홀컵에 살짝 들어갔다 나온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영균은 거의 이븐파로 홍목과 동타를 기록하며 우승. 대구에서 늘 원정 참가하는 영균과 석환에게는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모임 때마다 독지가가 나타나 기부를 하곤 한다. 이번엔 회계법인 대표 현철이 스폰서 개구리다. 모든 참가자에게 핸드 사이즈까지 파악해서 골프장갑을 선물했다. 누군가는 골프공, 간식, 토시를 기부하고, 또 누군가는 밥값을 미리 계산해 두고 사라진다. 오늘은 재근 약사 개구리가 그랬다. 한 테이블에서 점심을 같이 한 친구들의 몫까지 밥값을 내고 갔다. 카운터에서 알게 됐다.
정해는 매번 우리 집 앞까지 와서 운전에 서툰 나를 픽업해 준다. 오늘은 실종됐던 휴대폰을 찾아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정신없던 해프닝—앞팀 카트에 휴대폰을 두고 옮겨 타는 바람에 실종되었다가 라운딩 끝나고 찾았다는 에피소드. 우리 모임에선 이런 일, 늘 한 번씩은 터진다. 종일이라고 굳이 특정하진 않겠지만, 만조시각에 제부도 식당에 휴대폰 놓고 왔다 종일 고생했던 거 기억나지?
석재의 ‘다보기’ 기록은 나에겐 부러움 그 잡체. 나는 대부분 홀에서 더블보기로 마무리하는 하수라 그 정도만 해도 더할 나위가 없겠다.
고영의 열창과 윤기의 색소폰 연주를 듣지 못해 아쉬웠다. 하루 더 남아 친 선수들은 아마도 어젯밤 노래방에서 흥겹게 음주가무를 즐겼겠지.
홍목 총장개구리의 열정 덕에 참가자 수는 매번 늘어난다. 이번엔 8조, 총 32명. 10팀이 되는 그날까지 총무의 야망은 계속된다.
조편성도 세심하다. 가능한 한 희망하는 친구들끼리 묶어주는 배려가 돋보인다.
나는 이번에 형구, 태로, 홍국과 한 조였다. 드림팀이었다.
이번에 처음 본 홍국은 라운딩 내내 개그로 분위기를 띄웠고, 태로는 슬로바키아·몽골 대사 시절의 외교 에피소드로 재미를 더했다.
형구의 플레이는… 그야말로 신기할 지경이다.
드라이버, 우드, 어프로치, 퍼팅까지 완벽.
5~6미터 퍼팅이 쏙쏙 빨려 들어가니 보는 내가 다 짜릿했다. 이미 스크린골프 실력으로 익히 경험했지만, 필드에서 보니 또 달랐다. 티칭프로에게 필드레슨까지 받는 개이득같은 느낌적인 느낌!
2일차에 함께 치도록 특별히 조편성된 3학년 10반 친구들—재근, 재종, 형종, 의찬의 브로맨스 플레이를 직접 못 본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다음엔 이틀 머물며 2일 차까지 찐하게 놀아야지.
10반 누군가가 생중계 후기를 써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이 글은 경북고 58회 졸업생들이 함께하는 골프 친목회 ‘井蛙會(정와회)’ 참여 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