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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의 순정

리듬 위의 인간, 댄싱킴

by 이에누

서울 송파구 문정동, 시내버스가 끊긴 시간.
상가 건물 2층의 작은 네온사인 ‘댄스홀 KIM’만이 밤공기를 가르고 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음악, 룸바와 탱고가 섞인 묘한 리듬이 계단을 타고 흘러내린다.

한 사내가 홀로 거울 앞에 서 있다.
땀으로 젖은 셔츠, 손목에 감긴 테이프, 무릎에는 보호대.
‘댄싱킴’이라 불리는 그는 오늘도 혼자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발끝의 각도와 손끝의 선을 점검한다.

그의 움직임에는 긴장과 평온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건 내 몸으로 쓰는 일기야.”
그가 중얼거린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그에게 춤은 이미 ‘생업’이 아니라 ‘삶의 언어'다.

그가 처음 춤을 배운 건 30대 중반, 평범한 회사원이던 시절이었다.
야근이 일상이던 그에게, 동료가 권했다.
“형, 스트레스 좀 풀어. 요즘 라틴댄스 재밌대.”
그는 웃으며 따라갔다.

하지만 첫 수업에서 그는 충격을 받았다.
거울 속 자신이 그렇게 ‘몸치’ 일 줄은 몰랐다.
스텝은 엇박이고, 리듬은 틀리고, 팔은 어정쩡하게 떨렸다.
옆의 아주머니들이 유려하게 돌아설 때,
그는 발을 헛디뎌 파트너의 발을 밟았다.

“죄송합니다…”
그가 머쓱하게 웃을 때,
음악은 이미 다음 곡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날 그는 처음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계속해서 머릿속에 울리는 리듬, 그리고 그 순간 스스로도 모르게 내딛는 한 걸음.
그건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의 인생은 이미, 리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댄서.
그의 삶은 두 개의 시계로 흘렀다.
사무실에선 와이셔츠와 컴퓨터, 밤엔 연습복과 은색 구두.
그는 점점 회사보다 연습실에 오래 머물렀다.

동료들은 말했다.
“요즘 살 빠졌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출근 전에도 연습하거든요.”

몸은 점점 한계를 드러냈다.
무릎 통증, 허리 통증, 손톱 밑까지 피멍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퇴근길 버스에서 눈을 붙이다가도, 음악이 들리면 눈을 떴다.

“언젠간 무대에 서보겠지.”
그 말을 매일 되뇌며 버텼다.

그가 출전한 첫 대회는 구청 주최의 ‘생활체육 댄스경연’.
파트너는 직장 여성 동료였다.
서툴고 어색했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음악이 시작되자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그는 리듬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다.
하지만 마지막 회전에서 파트너의 드레스를 밟았다.
찰나의 정적,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파트너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성내천변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부끄러워도 좋다. 다음엔 제대로 하자.”
그때 이미, 그는 무대에서 떨어져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전국의 유명 강사를 찾아다녔다.
서울의 학원, 대전의 교습소, 부산의 동호회까지.
하루 연습 시간은 열두 시간을 넘겼다.

기술만 배운 게 아니라, 태도를 배웠다.
한 스승이 말했다.
“춤은 손끝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와.
너무 열심히 하려 하지 마. 느껴야 해.”

그 말이 마음에 박혔다.
그는 거울 앞에서 동작을 반복하는 대신, 눈을 감고 리듬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의 발끝이 음악에 ‘녹아든다’는 걸 느꼈다.
그날 이후 그의 춤은 달라졌다.

그는 마침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입상했다.
런던, 도쿄, 방콕, 시드니.
국제 대회가 이어졌다.

런던의 무대.
그는 스포트라이트 아래서 깊게 숨을 들이켰다.
수천 명의 관중, 조명, 그리고 파트너의 손.

“이건 경쟁이 아니라 고백이야.”
그가 속삭였고, 음악이 시작됐다.
그의 스텝은 날카롭고, 리듬은 부드러웠다.
그는 더 이상 춤을 ‘추는’ 사람이 아니라 춤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그 무대가 끝나자 심사위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는 미소도 짓지 못했다.
눈물이 먼저 흘렀다.

그날 밤, 호텔 복도에서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야 알겠다. 춤은 이기려는 게 아니라, 나를 구하는 거였어.”

귀국 후 그는 ‘댄싱킴 아카데미’를 열었다.
첫 수강생은 다섯 명.
지금은 수백 명이 그의 이름을 찾아온다.

그는 기술보다 ‘마음’을 가르쳤다.
“춤은 몸이 아니라 관계야. 파트너를 믿어야 무대가 완성돼.”

수업 중에는 엄격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그는 제자들의 땀 젖은 손을 꼭 잡았다.
“오늘의 실패는 내일의 리듬이야.”

제자들은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우리의 마에스트로.”
그는 늘 웃었다.
“그냥 댄싱킴이라고 불러. 난 아직 배우는 중이야.”




이제 환갑을 넘겼다.
몸의 속도는 줄었지만, 감정의 깊이는 더해진다.
무대 대신, 제자들의 공연을 객석에서 본다.

제자들이 완벽한 루틴을 마칠 때마다
그는 조용히 박수를 친다.
“저기 저 스텝, 예전에 내가 헤맸던 동작인데…”
그는 미소 짓는다.

밤이면 혼자 연습실 불을 켠다.
조용히 음악을 틀고, 발끝으로 리듬을 밟는다.
무릎은 아프고, 호흡은 거칠지만 그는 여전히 춤춘다.

“춤은 나를 늙게 하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하다.
그는 이제 무대가 아닌, 삶 자체를 안무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말했다.
“선생님, 저도 언젠가 세계 무대에 서보고 싶어요.”
그는 미소 지었다.
“그럴 거야. 근데 무대보다 중요한 건, 그 무대에 서기까지의 시간이지.”

그의 말엔 오랜 경험에서 나온 온기가 담겨 있다.

“춤은 결국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야.
남이 보는 스텝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리듬.
그게 무너지면 춤도, 인생도 흔들려.”

그는 여전히 거울 앞에 선다.
음악이 흐르면, 발끝이 반응한다.
그의 그림자가 벽에 겹쳐 춤춘다.
그 그림자는 늙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국가대표 댄서’라기보다 ‘인생의 스텝을 아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젊은 제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회자된다.

그가 걸어온 길은 화려하지 않았다.
부러움보다 오히려 ‘버팀’과 ‘인내’의 역사였다.
그 꾸준함이 그를 결국 세계 무대의 중앙으로 이끌었다.

그의 인생은 말하듯 속삭인다.
“치열함이란 결국 찌질함을 견디는 힘이야.”

그는 오늘도 조용히 음악을 튼다.
룸바, 차차, 왈츠, 탱고…
모든 리듬이 그 안에서 이어진다.
그의 삶이 곧 춤이고, 그의 춤이 곧 인생이다.




그를 처음 본 건 7년 전, 강남의 한 댄스 경연 리허설 현장이었다.
그는 이미 ‘전설’이었다.
하지만 그날, 무대 아래에서 본 댄싱킴은 생각보다 작고 평범했다.
무대 조명도, 박수도 없던 그 시간에 그는 허리를 굽혀 바닥을 닦고 있었다.
연습실 구석에서 떨어진 초크가루를 손수 닦아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대는 깨끗해야 리듬이 산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그가 춤추는 이유는 ‘보여주기’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라는 걸.

제자들의 기억에 따르면 그의 수업은 엄격했다.
“리듬은 카운트가 아니야. 숨이야.”
“스텝은 발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지.”
그의 말은 늘 철학 같았고,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느 날, 제자의 스텝이 자꾸 꼬이자 그는 어깨를 가만히 눌렀다.
“네 몸이 너무 앞서가. 리듬은 네가 아니라 파트너와 함께 가는 거야.”

그날 이후 제자는 리듬을 ‘이기려’ 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춤을 추면, 음악이 아니라 인간의 온도가 느껴졌다.
그건 연습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무대 뒤편에서 제자들을 바라봤다.
경연이 끝나고, 어색하게 인사할 때면 늘 같은 말을 했다.
“좋았어. 다음엔 좀 더 즐겨봐.”
그의 말엔 평가도, 위계도 없었다.
그저 ‘인생이 한 곡의 춤이라면, 다음 곡은 더 즐겁게 추자’는 뜻이 담겨 있었다.

한 번은 국제대회 예선에서 제자가 큰 실수를 했다.
그리고 무대가 끝나자 눈물을 보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땀 묻은 제자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네가 무너진 자리에 리듬이 남을 거야.”
그 말이 제자의 뼛 속에 박혔다.

시합이 끝난 어느 밤, 제자 몇 명과 선생님이 함께 맥주를 마셨다.
그는 한참을 듣기만 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사실 나는, 춤보다 사랑을 잘 추고 싶었어.”


모두들 웃었다.
그는 덧붙였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스텝보다 어려워. 서로 발이 안 맞을 때가 많거든.”

그의 눈빛은 그날따라 조금 젖어 있었다.
그는 음악을 켜고, 손가락으로 리듬을 탁탁 맞추더니 입을 떼었다.
“그래도 춤은 끝나도, 사람은 남아. 몸이 기억하거든.”
그날 이후, 그가 왜 여전히 무대에 서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환갑을 넘기면서부터, 제자들은 종종 ‘선생님, 이제 좀 쉬셔야죠’라고 말했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쉬면 리듬이 나를 떠나.”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그는 매일 같은 시간, 연습실 불을 켰다.
가끔은 음악이 멈춰도, 그는 그대로 서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마치 그 안에 여전히 흐르는 음악을 듣는 듯했다.

“춤은 듣는 거야. 들리면 움직이고, 안 들리면 기다려야지.”
그는 늘 그렇게 말했다.

그의 등 뒤로 조명이 길게 드리워질 때, 나는 그 그림자를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의 진짜 무대는 저 그림자 속이 아닐까.’




어느 날, 제자들을 모두 불렀다.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야.”
모두 놀랐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너희가 나 대신 무대에 설 때야.”

그는 마지막으로 음악을 틀었다.
탱고였다.
제자들은 둘씩 짝을 지어 섰고, 그는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발끝에서 시작된 그 한 걸음은 수십 년의 삶이 녹아든, 조용한 인사 같았다.

음악이 끝났을 때, 그는 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리듬은 사라지지 않아. 다만 몸을 옮겨 탈뿐이지.”

그날,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눈물이 음악처럼 흘렀다.

이제 그는 무대에 서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리듬은 여전히 사람들 안에서 살아 있다.
누군가는 대회를 준비하며 그의 말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새벽 연습실에서 그가 켜던 조명을 다시 켠다.

그는 더 이상 거울 앞에 서지 않아도, 사람들의 춤 속에서 계속 춤추고 있다.

“리듬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야.”
그가 늘 했던 그 말을, 이제는 제자들이 대신 중얼거린다.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면, 모두가 발끝을 들어 그의 그림자 속에서 다시 춤을 춘다.




〈첫 여성 파트너의 고백〉

그를 처음 만난 건 여름의 끝이었다.
습기와 음악이 뒤엉켜 흐르던 연습실.
나는 신입이었고, 그는 이미 전설의 프로였다.
그가 내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파트너는 눈으로 고르는 게 아니야. 첫 박자에서 결정 나.”
그 말에 나는 웃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날, 그의 손끝이 내 허리를 스쳤을 때 나는 내 몸이 아닌 누군가의 리듬에 처음으로 맡겨지는 감각을 알았다.

그와의 첫 스텝은 미끄러졌고,
그 미끄러짐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매일 새벽까지 춤을 췄다.
리허설이 끝나면 서로의 숨결이 뒤섞인 채
음악이 멈춰도 몸은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종종 말했다.
“우린 춤추는 동안만 사랑해도 돼.”

그 말이 슬프다는 걸, 그땐 몰랐다.
무대 위에서 그는 나를 누구보다 깊이 바라봤고,
조명이 꺼지면 가장 먼저 등을 돌렸다.

그는 춤을 사랑했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이 결국 같은 방향은 아니었다.

2005년, 런던.
우리의 마지막 국제대회였다.
그는 무대에 오르기 전, 내 손을 잡았다.
“오늘은 우리가 아니라, 리듬이 춤추게 하자.”
그 말이 유언처럼 들렸다.

음악이 시작됐다.
탱고의 첫 박자.
그의 눈빛은 칼날 같았고,
나는 그 눈빛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나갔다.
그 무대는 완벽했다.
심사위원들도, 관객도, 모두 숨을 죽였다.

그런데 음악이 끝나자 그는 내 손을 놓았다.
“이제 됐다.”
그 한마디가, 우리를 끝냈다.

그는 이후 제자를 가르쳤고, 나는 홀로 무대에 섰다. 함께 춤추지 않아도 그의 그림자는 늘 내 곁에 있었다.
어떤 남자와 춤을 춰도, 그의 손끝의 온도만이 내 몸이 기억했다.

한 번은 그가 내 공연장에 왔었다.
조용히, 맨 뒷자리에서.
공연이 끝나고 나가려던 그를 불러 세우고 싶었지만 그는 내 시선을 피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뒷모습은 여전히 리듬을 밟고 있었다.

몇 년 전, 새벽 두 시쯤이었다.
휴대폰에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때 너랑 추던 탱고가 아직 내 몸에 남아 있어.”

그 한 줄에 수십 년의 시간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답장을 쓰지 못했다.
다만 음악을 켰다.
탱고, Piazzolla의 Oblivion.
그리고 혼자 춤을 췄다.
그의 부재를 파트너 삼아,
그의 그림자와 다시 춤을 췄다.

이제 그는 제자들의 스승으로 불리고, 나는 미술관에서 ‘댄스 페인팅’을 그리는 작가가 되었다.
춤 대신 색으로 리듬을 표현하며 살고 있다.

가끔 그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여전히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리듬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몸을 옮길 뿐이다.”
그 말이 반가우면서도 서글프다.

어쩌면 우리 사랑도 그랬을 것이다.
몸을 옮겨 살아남은 리듬처럼, 우리의 사랑도 다른 형태로 여전히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작년 겨울, 나는 그의 제자 초청으로 ‘댄싱킴 리사이틀’에 갔다.
그는 여전히 춤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느렸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래된 음악에 맞춰 몸을 맡겼다.

무대 끝에서 그가 내 쪽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의 눈빛은 예전처럼 따뜻했고, 그 한순간에 모든 세월이 무너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천천히 인사했다.
그도 고개를 숙였다.
그 짧은 인사가, 우리의 마지막 춤이었다.

그는 여전히 춤추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를 그린다.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우린 여전히 같은 리듬을 나누고 있다.

때때로 새벽에 음악을 켜면,
그의 발소리가 바닥을 스친다.
그건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 나는 다시 젊어진다.

우리의 춤은 끝났지만,
리듬은 아직 내 안에 살아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 이 글은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김** 댄서 (63)의 실제 체험을 모티프로 한 다큐 픽션입니다. 그의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하되, 감정과 장면은 '글쓰기'를 위해 재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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