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앞에 서서
"너는 항상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게 문제야."
전화를 받자 불만이 가득 찬 남자의 목소리가 짜증스럽게 넘어온다.
"또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드는데?"
좋게 대답할 수도 있었지만 반복되는 상황에 여자도 상냥하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고쳐질 기미가 안보이잖아."
"나 지금 몸이 너무 안 좋아. 링거 꼽고 있는 난 안 보여?"
"네가 이런 식으로 대화를 피할 때마다 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고."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몸이 안 좋으니까 나중에 얘기하자는 것뿐이잖아."
"아 됐다. 네가 자꾸 날 이렇게 집착하게 만들어."
싸움이 반복되고 그 속에서 점점 별로로 변해가는 나를 발견하면 그 원인과 이유를 상대방에게서 찾게 된다. '나 원래 안 그래.', '네가 날 이렇게 만들어.',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까지 하게 되잖아.'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다 보면 삐뚤어진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구덩이를 파고 들어간다.
처음 만들어진 마음속 구덩이는 무릎 정도의 깊이여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다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실랑이와 말싸움을 반복하다 보면 그 구덩이는 점점 깊어져 나의 키를 훌쩍 넘어선다. 이제 혼자의 힘으로는 나올 수가 없다. 구덩이 밖에서 누군가가 손 잡아주어야만 나올 수 있는데, 이미 지쳐버린 상대방은 잡아줄 힘이 없고 설상 잡아준다고 해도 자칫 잘못하면 둘 다 빠져서 허우적거리기 십상이다.
내가 삐뚤어진 마음을 갖고 나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은, 상대로 인해서가 아닌 나의 감정상태이고 그걸 내가 표현한 것뿐이다. 그것이 자존감이다. 내 감정의 원인은 나에게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다.
감정이 격해지다 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말이 다르게 나올 때가 있다. 군더더기 없이 표현해야 할 마음에 자꾸 사족이 붙으면 균형을 잃고 치우쳐 걷게 된다. 창의적 작품을 만들어 낼 때는 자본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많이 보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많이 듣고, 글을 쓰는 사람은 많이 읽는다. 생각을 표현함에 있어서도 책 읽기가 중요하다. 결국에 읽는 것은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자본이 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에 우유부단하지 않은 중심이 있고, 가치관이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데 상처가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나의 감정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의 마음상태가 이러하여,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여.'
'나의 감정은 나로부터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