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으로부터, 홀로 발걸음하기 (1)
처음 대만 땅을 밟았을 때, 발에 닿는 감각보다 코로 스며드는 감각이 먼저였다. 이질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습도였다. 대한민국 남부지방의 한 여름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그 사이에 콕콕 박혀 있는 미약한 향신료 냄새, 나무가 뱉어내는 초록의 향기들이 천지에 배경처럼 깔려 있었다.
나는 예습을 거칠 시간도 없었다. 일산에서 근무하던 곳에서 퇴사 후, 퇴직금이 들어오자마자 나는 당장 떠날 준비를 했었다. 당장 내일 모레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매한 이후, 적절한 캐리어도 없어 지인에게 빌린 캐리어 속으로 이런저런 물건들을 계산 없이 담아 댔다.
지금이야 마땅한 호텔을 검색해서 편하게 여행을 즐겼겠지만, 스물 둘의 나는 그런 여행을 바라지 않았다.
보통 대만 중심부, 시먼, 타이베이 메인역 인근, 베이먼. 가장 호텔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들이었지만, 나는 이런 곳들을 뒤로한 채 다른 곳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내겐 수중에 큰 돈이 없었고, 최대한 아껴가면서 여행을 즐겨야 했다. 월 130만원을 겨우 벌던 내가, 퇴직금이라고 해도 얼마나 많았겠는가. 나는 당연히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즈음 한국에서는 <스타 호스텔>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었다. 깔끔한 외관과 조식을 제공하는 시스템. 다양한 이미지로만 접했을 때도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치도 타이베이 메인역 인근. 여행의 출발지로 삼기에는 너무도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타이베이 인근이 아닌 신베이시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현재는 없어진 곳이지만, 신베이터우(新北投)에는 내가 자주 발걸음 했던 게스트하우스가 하나 존재했었다. 남녀혼숙 8인 도미토리 하나, 개인실 두 개만 존재하던 아주 작은 게스트하우스였다. 신베이터우는 유명한 온천 관광지 중 하나였다. 인근에는 지열곡(地熱谷)이라는 유명한 온천이 있었다. 훗날 현지인에게는 포켓몬고 성지라고도 불렸던 곳이다.
그 당시, 아직 대만에는 공항철도가 없었던 시절. 모든 관광객들이 타이베이로 갈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버스를 이용하거나, 혹은 택시를 이용하거나. 특히 국광버스 1819번은 타이베이 메인역으로 향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 버스를 타고 타이베이로 향해야 했다. 나의 경우는 조금 달랐는데, 타이베이 메인역에서 내린 후 신베이터우로 가는 것은 비효율적인 루트였기 때문에 1819 버스 하차역 중 하나인 庫倫街口(쿠룬거리 입구)에서 하차하여 2호선 중 하나인 위엔산역(圓山站)에서 열차(MRT)를 타고 가는 것을 택했다.
쿠룬거리 입구역에서 내렸을 때, 하늘은 뜨거운 열기가 아닌 얄팍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까닭에, 나는 빠르게 치러우(騎樓) 아래로 대피해 있었다. 16세기 네덜란드인이 만들어낸 이 아케이드식 건물은 21세기인 지금까지 대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 구조였다.
빗방울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냈다. 갓난아이가 칭얼거리듯 했고, 유리를 두드리듯 날카롭기도 했다. 나는 캐리어를 옆에 두고 몇 분 간 떨어지는 빗방울을, 땅에 고여 아래로 흘러 들어가는 웅덩이를 바라보았다. 피부로, 폐 안쪽으로 밀려 들어오는 거대한 습도를 느끼고 있자 내가 대만에 도착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 대만에 도착해서 내가 방문한 곳은 대만의 편의점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하이라이프(Hi-Life) 였다. 근처에 편의점이 여기 밖에 없기도 했고, 빨리 우산과 이지카드를 구매해야 했다. 편의점 알바생은 나른한 표정으로 일상의 흐름을 보내고 있었다. 3월의 날씨에 맞지 않게 가벼운 나의 복장과, 수하물 태그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나의 캐리어는 그녀에게 이방인의 느낌을 한껏 가져다주었다. 그는 내가 내가 들어서자마자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歡迎光臨 (어서오세요)”
편의점을 들어서면 항상 들을 수 있는, 일종의 배경음악 같은 말.
내가 대만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은 우육면도, 딤섬도 아닌 편의점에서 파는 파파야 밀크였다. 한국에서는 쉽게 먹어볼 수 없는 낯선 과일,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는 포장재. 비록 순도 100% 과즙이 들어 있지는 않지만, 새로운 맛이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관심사였다. 나는 파파야 밀크 하나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갔다. 미리 환전해 둔을 건네며 이지카드를 구매했다. 편의점 직원은 여러 말들을 내게 건네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중국어 실력이 왕초보 수준이었기에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 오케이 오케이!”
그녀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괜찮다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沒事 괜찮아
연신 메이시 메이시를 외치며 나에게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일종의 긴장감이었을까.
대만은 관광객이 매우 많은 나라 중 하나지만, 쿠룬거리 입구 일대에는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더 많은 동네였다. 그 흔한 호텔도 없고, 근처에 지하철과 집들로 빽빽한 도시. 물론 위엔산 역 근처에 MAJI MAJI 라는 마지스퀘어와 엑스포 공원 같은 공간이 있긴 했으나 내가 있던 편의점은 정반대에 위치해 있었다. 새로움의 영역보다 일상의 영역에 더 밀접한 공간. 이곳에 나타난 나라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나는 카페에 오래 근무를 했던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도 일을 했던 카페에서 퇴사 후 퇴직금을 받은 돈으로 대만에 오게 된 것이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일산에 있는 아파트단지 근처의 상가 거리였다. 그곳에서의 일은 늘 무료함의 연속이었다. 같은 얼굴들, 같은 차량들, 같은 이웃들을 매번 바라보며 나는 따분함을 베이스로 두고 일을 했다. 그 와중에 처음 보는, 혹은 외국인들을 바라 볼 때마다 사뭇 긴장하곤 했었다. 그랬던 나였기에, 그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가끔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