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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기억

by 한운희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었다. 더운 땡볕에도 아랑곳 않고 앞마당에서 동생들과 함께 신나게 놀고 있는데 전화벨이 연신 울려대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부엌에서 급히 나와 전화를 받으셨고 통화가 끝나자마자 아빠가 계시는 부천 수영장으로 가야 한다며 우리를 재촉하셨다. 나와 동생들은 영문은 잘 모르지만 수영장이라는 세 마디에 모두 환호를 질러댔고 며칠 전 엄마가 사 오신 세 자매의 똑같은 분홍 땡땡이 비키니를 챙겨 서둘러 택시를 탔다.




부천 수영장은 부천에서 시흥으로 넘어가는 하우고개 중턱에 위치한 부천시 유일의 수영장이다. 성인 풀장과 어린이 풀장으로 나뉜 꽤 규모가 큰 수영장인데 그 당시에도 간단한 간식이나 음료를 사 먹을 수 있는 매점이 있고 수영복과 수영모도 대여해 주다 보니 휴가철에 많이 붐볐다.




수영장에 도착하니 넓고 시원한 풀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햇볕을 받아 찬란히 반짝이는 수영장으로 금방이라도 뛰어들고 싶었지만 어른들의 허락을 기다려야 했기에 돗자리를 깔고 집에서 싸 온 김밥을 나눠 먹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서둘러 아빠가 계시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처음 뵙는 동료 선생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계셨다. 아빠는 그 당시에 부천시 관내의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는데 우리처럼 사모님과 자녀를 동반한 분들이 많았다. 어른들은 수영을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 더 즐거우셨는지 좀처럼 수영장에는 들어가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버드나무 아래에 더러 있는 탁자와 의자들을 장난감 삼아 요리 저리 옮기며 한참을 놀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어른들이 수영장에 들어갈 기색이 안보이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잠깐 한눈판 사이 나는 거침없이 어린이 수영장으로 향한 후 주인 없는 튜브를 하나 주워 물속으로 들어갔다. 튜브를 타고 설렁설렁 물장구를 치며 놀다 보니 혼자 노는 것이 어느새 재미가 없어져서 저 멀리 보이는 북적북적한 성인 풀장에 눈이 갔다.




겨우겨우 헤엄쳐서 한참 만에 성인 풀장에 도착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애가 성인 풀장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호각을 불거나 제지를 하기는커녕 그 당시 아무도 나를 막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신나게 헤엄치며 놀고 있는 어른들 틈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다. 가만 보니 곳곳에 튜브를 타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몇몇 눈에 들어와서 ‘ 저렇게 타면 더 재미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자세를 고쳐 잡고 튜브 위에 걸터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튜브에 엉덩이를 걸치려는 순간 내 작은 몸은 한쪽 손만 튜브에 걸쳐진 채 구멍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갔고 바닥에 발이 안 닿아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입과 귀 콧속으로 정신없이 물이 들어와 너무 고통스러웠다.




처음엔 어떻게든 튜브 위로 올라가 보려고 버둥거렸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힘만 빠지고 점점 몸은 가라앉았다. 그러기를 한참,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젠 더 이상 고통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런데 ‘이게 죽음이라는 거구나 ’ 하고 체념하는 순간 갑자기 영화필름이 빠르게 지나가듯 10여 년 살아온 나의 짧은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심지어 ‘아, 저땐 저랬었지. 이땐 이랬었지.’ 하며 지난날의 나를 편안히 마주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 죽음은 그리 무서운 게 아니구나. 이대로라면 편안히 하늘나라로 가는 것도 괜찮겠구나’.라고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쯤 순간 마음이 고요해지며 살면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평화가 찾아왔다. 오히려 그 행복감을 뭐라 형용할 길이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한참을 다른 세계에 심취? 해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나를 물 밖으로 쭉 들어 올리는 이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성인풀 벽에 기대어 사람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어느 아주머니였다.



처음부터 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아주머니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던 아이가 물 위로 계속 안 떠오르자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급하게 내 손을 끌어당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숨이 끊어질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나는 갑작스러운 이승행? 이 너무 당황스러워 그 아주머니가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분은 나를 엄마 아빠가 계신 곳까지 친히 데려다주시기까지 하셨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부모님은 나를 위로하고 걱정하기보다는 어른 없이 혼자 수영장에 갔다고 내 등짝을 여러 차례 때리셨다. 서러움이 밀려왔지만 그날 물속에 빠져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었던 사실을 부모님께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날 이후로 죽음이라는 것은 그리 무섭지도, 또 막연한 공포에 떨 일도 아니라는 것과 생과 사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사실을 조금은 일찍 깨달았다.




그리고 그해 여름 아찔한 기억으로 말미암아 죽음 앞에 더 의연할 수 있게 되었고 살아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알게 되었다.




물론 족히 50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생과 사 사이에 있는 내 인생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세월이 흐를수록 물리적인 죽음의 시간이 더 가까워지겠지만 쓸데없이 앞서 걱정하고 부러 불편해하지는 않으련다. 그 또한 내려놓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삶이란 서정이 짙은 예술이라 하니 죽음 또한 사는 동안 잠시 잊었던 공통된 정서이리라. 끝으로 내 생명의 은인이셨던 아주머니께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 것도 못내 송구하다. ‘어찌 보면 물에서 건져 올려진 이후로 덤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과연 그날 이후로 잘 살아왔다고 말할 수 없어 부끄럽지만 앞으로는 주어진 삶을 더욱 사랑하며 겸허히 살아야겠다. 아니, 겸허히 살아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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