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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반장이야?

by 한운희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학교 수업을 모두 마치고 친구들과 청소를 하기 위해 책상과 의자를 다 밀어 붙이고 교실 바닥, 복도, 계단, 창문 등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서로 장난도 치고 별것 아닌 일에도 호호 깔깔 대면서 열심히 바닥을 쓸고 닦았더니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런데 청소를 거의 마쳐 가고 있을 때쯤...

지금으로 말하면 일진 (그때 말로는 날라리) 1 짱이 그들 무리와 함께 신발을 신고 교실로 들어왔다.

걔 중에는 신발을 신은 아이도 있고 실내화를 신은 아이도 있었는데 청소 시간에 하라는 청소는 안 하고 우르르 몰려 나갔다가 청소가 끝날 때쯤, 그것도 깨끗한 교실 바닥에 더러운 흙먼지를 잔뜩 묻히며 들어오는 것이었다.



화가 몹시 난 나는 작정을 하고 우리 반, 아니 전교 1 최고인 김지영을 불러 세웠다.



“ 야, 김지영~ 신발 벗어. ”



김지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중학교 1학년 입학부터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소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빛나던?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그 조그마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마치 인형처럼 깜찍하게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집도 잘 살아서 신발과 가방 등 그 시절 잘 나가던 나이키며 프로스펙스등을 신고 메고 다니는 뭍 또래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친구였던 것이다.




말 한번 시킬라치면 항상 상대를 깔보는 눈빛으로 톡톡 쏴대는 바람에 친구들도 그 아이 눈치를 많이 보고 소위 신봉자들?(비위 맞추는 애들) 외에는 가까이 다가가질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내겐 그런 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김지영은 처음엔 나의 말에 흠칫 놀라는 듯하다가 예의 그 내리까는 눈빛을 쏘며 말했다.


“ 네가 반장이야?

네가 뭔데 신발을 벗으라 말라야? ”



하고 되물었다.



나는 그 말에 더 부에가 나서 날 선 목소리로

쏘아 부쳤다.



“ 꼭 반장이어야만 신발 벗으라고 말할 수 있는 거야?

너야 말로 애들이 열심히 청소해 놓은 거 눈에 안 보이니?

하라는 청소는 안 하고 기껏 청소해 놨더니 교실 바닥에 흙먼지 잔뜩 묻히고 들어와서는 뭘 잘했다고 반장이니 뭐니를 운운해? “


너무나 갑작스럽게 싸움이 시작되는 바람에 교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친구들이 말릴 새도 없이 우리 싸움은 서로 상대를 째려보며 긴 대치에 들어가고야 밀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내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 한운희, 이겨라~ 한운희, 이겨라~ “



나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전개에 당황하였지만 친구들의 응원이 내심 뿌듯하고 고마웠다.

반면에 지영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결국에는 참았던 눈물이 또르륵 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그 순간

얏호 하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친구들도 평소 지영과 그의 무리들의 행동이 못마땅했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날 지영이가 결국 신발을 벗었는지 안 벗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그날 이후로 일명 날라리 무리들은 조용히 몰려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사춘기 객기 수준의 일화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 아이도 나와 같은 질풍노도의 시절을 지나고 있었을 터인데 반 친구들 앞에서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싶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네가 반장이야? ’라는 말은 소위 중2병을 앓고 있던 내게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말이었고 어린 나에게도, 지금의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순간 반장 운운 하는 말에 살짝 주눅이 들어 답변을 하지 못했더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딴판으로 흘러가거나 반 주도권의 흐름이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소위 모든 단체의 대표는 조직의 질서와 규율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대표를 뽑아 놓고도 수세에 밀려 방관만

한다거나 믿거라 맡겨만 놓은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책임한 방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제와 새삼스레 반성을 하는 것은

그 친구가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지라도 좋은 말로 일러 주었다면 그 친구의 상처가 덜 했을 것이고 자존심도 덜 상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젠 그도 나도 중년이 되었다.

부디 그 일이 학창 시절의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면 나를 충분히 미워해도 되니 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 시절 담임선생님도 학급 반장도 그 일에 나서지

않은 것을 보면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 의 힘이 분명히 존재했었고 그 권력의 힘에 기대어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었다는 것은 오늘날 사회의 모습과 비추어 봐도

별반 다름이 없음이 씁쓸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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