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비늘 빛이 낭랑한 물고기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작고 귀여운 그 물고기는 오늘도 무구하게 물살을 가르며 물속을 힘차게 유영합니다. 술래가 되어 수초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친구들을 발견할 때면 그 누구보다 더 쏜살같이 내달려 항상 일등을 놓치지 않는 멋쟁이 물고기였습니다. 친구들은 그런 물고기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물고기의 어깨는 늘 으쓱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물고기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물 위로 올라갔습니다. 물 위의 세상은 물속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바람이 일 때면 몹시도 상쾌했고 햇빛에 반사된 비늘이 일곱 빛깔 무지개 색으로 찬란히 빛나 그 아름다운 빛깔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물고기는 물 바깥세상이 무척 더 궁금해졌습니다. 한참을 놀다가도 바깥세상이 궁금해지면 어김없이 물 위로 나와 세상을 관찰하는 것이 물고기의 일상이자 행복이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찰나의 시간을 놓칠세라 눈을 연신 껌벅거리고 입도 연신 뻐끔거렸습니다.
물고기의 눈에 비친 물 바깥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찬찬히 내리쬐는 햇살이 그러했고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하얀 구름이 그러했습니다. 햇살에 비쳐 찬란히 빛나는 비늘의 산란은 물고기로 하여금 더욱더 바깥세상을 동경하게 만들었습니다.
“ 물속이 아니라 물 바깥에서 살 수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거야. ”
“ 내 아름다운 비늘의 반짝임을 본다면 세상 누구든 날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야. ”
이제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건 더 이상 재미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자주 찾아왔지만 물고기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물고기는 더 자주 물 바깥으로 나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 오늘은 어제보다 숨을 더 꾹 참고 버텨봐야지. 이렇게 시간을 조금씩 더 늘리다 보면 언젠가는 물 밖으로 완전히 나갈 수 있을 거야. ”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 버티면 버틸수록 눈은 타들어가고 입도 바짝바짝 말라왔습니다. 설상가상 비늘도 점점 말라붙어 온몸이 가시가 돋친 듯 따끔거렸습니다.
“ 아, 그래도 오늘은 꽤 버텼는걸. 내일은 오늘보다 더 버텨볼 테야. ”
물고기는 그렇게 하루하루 고통을 참아내며 물 바깥으로의 험난한 도전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그날도 어김없이 물밖으로 입을 내밀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아름다웠던 비늘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아있던 비늘조차 우수수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 아! 안돼. 내 아름다운 비늘들! ”
“ 아! 아 ~~~ 아! ”
물고기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신도 몸도 점점 아득해졌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그동안 함께 놀았던 친구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고기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물고기는 퀭한 눈과 말라비틀어진 입을 하면서도 우수수 떨어져 나간 비늘밑에 남아있는 자신의 말라비틀어진 피부에만 온통 신경이 쏠렸습니다. 형편없는 모습을 마주한 물고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절망하며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친구들은 그런 물고기를 부드럽게 달래며 한동안 꼭 안아주었습니다.
“ 물고기야, 네 비늘이 영롱한 빛을 내지 않아도 넌 충분히 아름답단다. 물속에서의 너의 모습은 누구보다 더 날쌔고 건강했었지. 물 밖의 세상은 우리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육 짐승들의 것이란다. 네가 그랬듯이 그들 또한 가질 수 없는 바닷속 세상을 항상 동경하고 부러워하지. 저마다의 삶의 터전이 다르기에 어쩌면 이 세상이 더 아름답고 조화로운 건 아닐까? ”
물고기는 친구들의 진심 어린 위로와 따뜻한 조언에 힘을 내보기로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건강을 회복한 물고기는 다시 친구들과 바닷속 구석구석을 누비며 즐겁게 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험한 몰골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눈을 돌려 다시 보니 하늘거리는 수초와 그 속에 숨은 작은 물고기마저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가끔씩 몰아치는 거친 파도에도 몸을 편안히 내맡기면 그만 이었고 찔끔 거리는 모래알에 생채기가 나도 행복했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한참 한참 지나갑니다.
물고기는 그날도 친구들과 같이 즐겁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 물고기 하나가 놀라서 소리를 지릅니다
“ 앗! 비늘이 다시 돋아나고 있어. ”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다소 험했던 물고기의 지느러미 사이에서 여린 비늘들이 고개를 내밀고 오색빛 분을 바른 듯 여기저기 돋아난 뽀얀 비늘이 새순처럼 살랑거립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고기는 감격의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다시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은 하나같이 기뻐하며 물고기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부둥켜안고 우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물고기는 결심합니다. 슬플 때나 힘들 때나 항상 곁에서 지켜주는 친구들처럼 친구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곁에서 꼭 힘을 주는 친구가 되겠다고......
“ 나 잡아봐라. ”
친구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아납니다.
물고기와 친구들 모두 그 친구를 정신없이 쫓기 시작합니다.
거친 파도를 헤치며 신나게 달려가는 물고기들의 모습이 몹시 활기찹니다. 수초사이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즐겁게 가르며 웃고 떠드는 그들의 모습은 이 세상 누구보다 더 행복했습니다
.
근처 바위 밑에서 물고기들의 얘기를 엿듣고 있었던 문어 할아
버지의 시선이 그들의 모습을 따뜻이 쫓아갑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물고기는 본인(한운희)의 이야기입니다
그동안의 삶의 모습과 가치관의 변화를 물고기를 통해 의인화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