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께
아빠 안녕하세요
저는 큰딸 운희입니다.
생각해 보니...
생신 때나 어버이날에 축하드린다는
짤막한 글귀 외에는 이렇게 긴 편지를
써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40년간 교직에 근무하시고
교장으로 정년퇴임 하시던 날~
전 교직원이 교문까지 일렬로
도열해서 불러주던 상록수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먹먹해져 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빠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힘주어 말씀하셨죠.
난 누구보다도 교직을 사랑했고
누구 보다 학생을 사랑했으며
누구보다 더 교직을 당신의 천직
으로 여기며 살아왔노라고......
애써 눈물은 숨기셨지만
창가에 촉촉이 젖은 습기는
당신의 지난날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들처럼
다정하지는 않아도...
혹은 우리 4남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시는 법은
없었지만...
아빠는 방학이면 우리
여섯 식구 텐트며 부식들 챙겨서
전국을 누비며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하셨지요.
버스와 기차를 몇 번을 갈아타고 다녀도
불평하나 없었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희 네 자녀~
감성과 정서가 충만하게 성장할 수 있었고 많은 체험을 하며 견문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대학농구 광팬이시기도 한 아빠는
항상 가족과 함께 경기를 관전하는 것을
좋아하셔서 중앙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저희를 데리고 경기장에 출동하셨죠~
심지어 큰애를 임신해 만삭이 되어서도
함께 가는 것을 원하셨기에 불만이 있어도
표현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
또한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선수들 이름과 등번호, 신장은 기본이고
어느 고교 출신이며 코치진은 누구였는지
부모님 이름과 직업 포지션을 포함, 전적과
대진표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꿰고 있는 반면
자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 무엇을 좋아하는지 한 번도 물어보신 적이 없어 사실 많이도 서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모든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직장에 40년간
근속하시며 성실하게 일해오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4명이나 학교에 보내려면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요? 지금 와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 되다 보니 책임과 의무를 다 하신 것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저도 지천명이란 나이에 이르렀습니다.아빠는 4형제 중 아픈 손가락인 큰딸의 처지와 형편을 항상 안타까워 하셨죠 ~ 웬만해선 열리지 않던 아빠의 지갑이 딸 몸보신 시켜준다고 열리고 사랑한다 하시며 용기를 북돋아 주실 때에는 죄송한 마음과 더불어 우리 아빠도 정말 많이 늙으셨네 라는 생각에 눈물이 차오릅니다.
이제는 걸음도 뒤뚱뒤뚱 온전히 걷지도 못하시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데가 없으심에도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 청소며 정원관리까지
쉴 틈 없이 일하시는 우리 아빠~
아빠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알고 있지만
아쉬운 세월을 탓하기보다 현재에 충실하며 부모님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영육 간에 주님의
은총이 듬뿍 내리시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드리오니 남은 시간 동안 형제간에 우애와 단합을 통해 부모님의 신간이 더욱 편안해지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큰딸 운희올림